이동우 칼럼위원

이동우 수필가
이동우 수필가

사무실 문을 열고 나가면 바로 옥상과 연결된다. 문을 열면 옥상이 바로 있으니 베란다라고 불러야 맞겠지만 그렇게 부르기엔 규모가 크다. 입주해 있는 건물이 아래층에서 보면 옥상이고, 우리 사무실에서 보면 베란다가 되는 독특한 구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시골집 마당 정도 되는 넓은 옥상을 내 집 앞마당처럼 사용하고 있다.

이곳 옥상에 작은 텃밭을 꾸며 놓았다. 텃밭이라고 말하기엔 규모가 작지만 고추·상추·오이·가지·방울토마토·들깨·방아까지 웬만한 구색은 모두 갖춰 놓고 있다. 처음엔 고추·상추·치커리·방울토마토 등 네 종류의 작물만 심었다. 작물이 잘 자랄 수 있도록 심는 간격도 넉넉하게 했다. 화원에 가서 거름을 사다 뿌려주고 수시로 옥상을 드나들며 물을 줬다. 상추와 쑥갓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났다.

상추를 두 번 정도 뜯어 먹었을 때 쯤 회사 동료가 오이를 심어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했다. 오이는 덩굴식물이라 옥상 텃밭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했지만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기어코 오이 모종을 사다 심었다.

그리고는 이틀이 멀다하고 왜 오이가 달리지 않느냐며 조바심을 내기 시작했다. 시간이 되면 저절로 알아서 오이가 달릴 것이라며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고 했다.

그렇게 한 동안 조바심을 내더니 이번엔 가지 모종을 사다 심는다. 그러고는 또 가지가 열리지 않는다며 조바심을 내기 시작한다. 거름이 부족한 것 같다며 요소비료를 사다가 뿌려주기도 했다. 열매가 달리지 않을 것이란 나의 예상과 달리 여름이 되자 오이와 가지에 탐스런 열매가 달렸다. 척박한 환경에도 굴하지 않고 열매를 맺어준 오이와 가지가 대견하다.

오이가 열매를 맺자 자신감이 붙은 동료는 수박을 한 번 심어보겠다고 나선다. 수박은 토양의 힘이 좋은 곳에서 거름을 많이 주면서 키우는 것이지 좁은 옥상에서 키울 수 있는 건 아니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뜻을 굽히지 않는다. 어떻게든 수박을 심고야 말겠다는 각오를 비치더니 기어코 수박 모종을 사다가 심어 놓았다.

수박을 심어 놓고는 하루에도 몇 번씩 옥상에 나간다. 수박이 더디 자라는 것 같다며 한동안 마음 졸여하더니 노란 수박꽃이 피어난걸 보고는 무척 신기해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번에는 열매가 열리지 않는다며 또 노심초사한다. 그러기를 여러 번, 드디어 수박 넝쿨에 조그만 열매가 달렸다. 한 뼘 깊이도 안 되는 얕은 땅에 심어진 수박에서 새끼손톱 만하게 달린 열매가 신기하기만 하다.

열악한 환경에서 꽃을 피워내고 열매를 맺은 수박이 기특하기만 하다. 진짜로 수박을 먹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게도 했다. 그러나 헛된 기대였다. 새끼손톱 크기로 열렸던 수박열매는 며칠이 지나지 않아 줄기에서 떨어져 나갔다. 이후에도 몇 번 열매가 열리기는 했지만 결과는 늘 마찬가지였다. 욕심이 너무 과했다.

수박은 수박이 자라날 수 있는 환경이 있다. 수박이 자랄 수 없는 환경에 인간의 욕심으로 수박을 심는다면 그 결과는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수박뿐만이 아니다. 모든 농산물은 그에 맞는 환경에서 자라나야 한다. 물이 잘 빠지는 밭에 심어야 하는 고추를 미나리처럼 습지에 심어서는 안 될 일이다.

작물을 키우며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좋은 토양을 만들고, 잡초를 제거하고, 병충해를 막아주는 일 등에 불과하다. 열매를 언제 맺을지는 작물이 스스로 결정한다. 열매가 달리고 익어가는 것은 사람의 손을 벗어난다. 시간이 지나고 환경이 갖춰져야 열매를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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