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수 칼럼위원

▲ 김철수 거제신문 서울지사장

얼마전 분노조절 장애로 인한 '묻지마 범죄' 소식이 잇따라 들려 가슴이 휑하게 뚫리는 기분이다. 양산의 아파트 외벽 도색작업을 하던 작업자가 켜 놓은 휴대폰 음악소리가 시끄럽다며 작업 밧줄을 끊는 바람에 5명의 자녀를 둔 가장이 목숨을 잃었는가 하면, 인터넷 수리요청을 받고 방문한 기사를 향해 통제되지 않는 분노를 폭발시켜 기사의 생명을 빼앗는 사건이 발생했다니 참담하기 이를 데 없다.

이렇게 화를 참지 못하고 저지르는 분노 범죄가 2009년 이후 해마다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분노를 참지 못해 우발적으로 사람을 폭행하는 일도 5배 이상 증가했다. 분노는 말과 행동이 돌발적으로 격렬하게 표현되는 본능적인 감정이다. 과도한 스트레스에 장기간 노출되거나 가슴 속에 화가 과도하게 쌓여 있으면 이것이 잠재돼 있다가 감정을 자극하는 상황이 생기면 화가 폭발하게 된다.

분노는 드러내는 방식에 따라 드러내거나, 품는 방식을 사용하는데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표출될 때 '분노 조절 장애'라고 한다. 이전에는 지나친 분노 억압으로 인한 울화병이 많았지만 지금은 지나친 분노 폭발로 인해 분노조절 장애가 많아지고 있다.

분노조절 장애는 충동적인 분노 폭발형과 습관적 분노 폭발형으로 크게 두 가지의 양상을 보인다. 충동형 분노조절 장애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분노가 폭발하는 것으로 이 사람들을 흔히 다혈질이라고 부른다.

습관적 분노조절 장애는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분노 표현 자체가 효과적이라는 것을 학습한 사람들로 목소리가 크면 이긴다는 식의 경험을 통해 시간이 갈수록 분노 표출 빈도가 커진다.

정신의학에서는 '간헐성 폭발장애'와 '외상 후 격분장애'란 용어로 표현한다. 간헐성 폭발 장애는 자주 이성을 잃고, 지나치게 분노를 표출하는 증상이고, '외상 후 격분 장애'는 특정 사건으로 충격을 받은 뒤 분노상태가 오랫동안 지속되는 것을 말한다.

한편으로 분노조절 장애의 원인으로 공동체 의식의 약화와 경쟁 지상주의가 분노 조절 장애를 낳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분노조절 장애' '묻지마 폭행' 등 현대사회에서 자주 일어나고 있는 범죄는 사회적 결속력과 지역 공동체의식이 깨지면서 혼란을 겪는 '아노미(anomie)현상'이 자리하고 있음을 기억할 때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가 보다 요이할 것 같다.

아노미란 과거의 규범이 더 이상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변화에 부응하는 새로운 규범이 출현하지 않음으로써 나타나는 혼돈·혼란·불안 등을 지칭한다고 봄이 보다 정확할 것이다.

오늘날 아노미적인 상황을 야기한 주범의 하나는 익명성을 기반으로 한 도시적인 생활양식이라 할 수 있다. 급격한 도시화의 물결이 시작되기 전 한국사회는 전형적인 이웃 공동체가 살아 있었다. 지금도 농촌에서는 조상이 누구인지부터 뉘집 자식인지까지 소상히 알고 지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전형적인 노마드족이라 할 미국인들 보다  우리 국민들이 더 자주 주거를 옮긴다고 한다. 이웃에 누가 사는지 알기도 전에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는데, 이는 대도시 일수록 심하고 단독주택보다 아파트일수록 빈번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날로 증가하는 분노조절 장애로 인한 범죄를 예방하는 해결책은 없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분노조절 장애 환자들을 홀로 방치하는 것이 분노 범죄를 키울 수 있다고 지적하며 이들이 치료를 제때 받는다면 보통의 사람들처럼 분노를 스스로 가라앉힐 수 있다고 한다.

분노 조절 장애 환자들이 모두 잠재적 범죄자인 것은 분명 아니지만, 이제는 분노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차원으로 정신 장애 환자를 국가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방안을 고심해 봐야한다. 방치가 아닌 관심으로 문재해결의 첫 걸음을 나아가야 할 때이다.

어쩌면 복잡하고 험난한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는 모두가 분노 조절 장애 증후군 환자인지 모른다. 물론 경중의 차이는 분명히 있으리라. 밖으로 표출이 안 됐을 뿐이지 누구에게나 분노는 내재돼 있지 싶다. 얼마나 참고 인내하느냐는 개개인의 인격과 성품내지 후천적인 학습의 효과이지 않을까.

아무튼 근래에 빈번하게 일어나는 분노 조절 장애로 인한 범죄가 줄어드는 성숙한 사회가 되기를 기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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