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사회의 빛나는 횃불이 되길

거제 지역언론의 효시로 언제나 거제시민 곁에서 정론직필의 사명을 다하고 있는 거제신문의 창간 29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이 있는데 거제신문은 어느덧 3번의 강산 변화와 함께 했습니다. 앞으로 100년을 지금처럼 건전한 비판과 사회의 감시기능으로 지역공동체를 건강하게 만드는데 힘써 주시기 바랍니다. 29년의 세월이 가진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그 무게의 가치를 알고 있는 한 거제신문의 순항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지역신문이 어려운 시기일수록 곧바로 나아간다면 그 모습은 더 빛날 것입니다.

거제신문이 한 발 나아가면 그것이 곧 지역신문의 역사가 된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갖고 지역사회의 빛나는 횃불이 되길 바랍니다. 29년 동안 어렵고 힘든 세월을 이겨내며 지역사회의 공기 역할에 충실해온 거제신문 김동성 대표 이하 임직원들에게도 격려의 박수를 보냅니다.

독자에 대한 열린 마음으로 거제신문은 신문에 대한 쓴 소리를 외면하지 않았고 그 결과 전국 어느 지역 주간지와 견주어도 부족함 없는 신문으로 성장했습니다.

요즘 세계적인 조선산업 불황으로 지역경제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거제신문이 행정과 기업과 시민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앞장서서 보도하고, 시민들이 불안에서 헤쳐 나오도록 가교 역할을 해주길 바랍니다.

급변하는 지역 언론의 물결 속에서도 꿋꿋하게 제 자리를 지키며 발로 뛰는 취재와 다양한 편집으로 독자와 시민들에게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는 거제신문에게 다시 한 번 박수를 보냅니다.

 

독자와 소통하는 거제신문이 되길

창간29년을 맞이한 거제신문에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그동안 거제의 밝고 어두운 면면을 날카로운 시각과 올바른 관점으로 정론직필해주신 거제신문 관계자들께 존경과 감사를 보냅니다.

거제신문이 지난 29년 동안 독자들과 호흡하며 쌓아온 수많은 노력들이 모여 지금 빛나는 거제를 선도하는 신문으로 거듭났습니다.

거제는 조선산업의 눈부신 성장과 침체를 체험했고 지금 재기의 몸부림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한국과 거제의 정세가 불안하지만 오히려 이를 역전의 기회로 삼아 우리 거제가 한 단계 더 발전하게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거제의 발전과 시민의 애환을 대변해온 거제신문이 거제 성장의 구심점이 되길 바라며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거제는 우리나라 역사에서 길이 빛날 두 사람의 대통령을 탄생시킨 성지입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최초의 문민 대통령으로 군사독재에 종지부를 찍었고 신임 문재인 대통령은 더불어 함께 잘사는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성실하고 유능한 대통령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29세라면 이제 성인이 된지도 9년이 지나 장년이 된 때이니 이에 걸맞게 성숙하고 당당하게 거제를 민주와 행복의 메카로 만드는데 거제신문이 큰 역할을 해주기를 바랍니다.

지난 세월과 같이 냉철한 통찰력으로 다양한 정보를 전달하고, 독자와 소통하는 거제신문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거제와 거제인의 행복한 미래를 위해 거제신문이 앞으로도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다시 한 번 창간29년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앞으로도 계속해 크나큰 힘과 지혜로 힘차게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거제신문 기자에서 최고의 충성 독자로

창간 초기 거제신문 기자로 일한 경험이 있기에 거제신문의 29년은 남달리 감회가 깊습니다. 옥포동 에드미럴 호텔에서 2주년 기념행사 했던 일이 생생한데 어느새 29년이 됐다니 놀랍고 기쁩니다.

거제신문에 몸담게 된 것은 우연이면서 필연이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능포동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곤 했는데 버스를 기다리기 전에 약국에 들어가서 친구와 수다를 떨곤 했습니다.

친한 고향친구가 약국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거제신문에서 기자를 채용한다고 하더군요. 알고보니 약국 대표가 거제신문 창간에 참여한 것이었습니다. 그때가 구직을 생각하고 있어 얼떨결에 이력서를 냈고 거제신문에서 일하게 됐습니다.

돌이켜보면 거제신문에서 기자로 일하면서 지역밀착형 기사를 쓸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소상공인을 소개하는 연재 꼭지를 담당했는데 향토기업인 막걸리 주도가를 찾아가 취재하고 기사 쓰고, 편집하고, 그것이 인쇄돼 나오는 일련의 과정이 너무나 신기했습니다.

당시 동료 중에 김한주 변호사가 선임이었는데 참 열심히 하는 기자였습니다. 사회부를 맡아서 집회와 시위현장에 발로 뛰면서 취재했습니다.

그렇게 일하던 중에 고향 선배가 공무원 시험을 친다고 해서 얼떨결에 또 접수를 하게 돼 공무원으로 지금까지 지내고 있습니다. 그때도 공무원을 하겠다는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부산가려던 배가 고장 나서 2시간이 늦는다고 해서 선배 따라 시험접수를 하게 된 것입니다.

지금은 거제신문을 떠나 있지만 항상 최고의 충성 독자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보고 있습니다.

 

거제신문이라서 좋다

지난 1995년 5월에 거제신문에 입사했다. 긴 시간이었다. 3년차 기자인 류성이 기자가 중학교 시절(2003년) 거제신문의 편집부로 견학을 와 나의 설명을 듣기도 했다고 하는데 이젠 직장동료로 일하고 있으니.

창간 29년이라는 글자를 편집하는 나의 손 역시 나름대로 신문의 역사가 담겨있다. 어렵고 힘든 시절이어서 그랬는지 신문기사가 나가기만 하면 신문사로 찾아와 고함을 지르는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그래도 지난 시절은 아름다운 것이라 지나고 나니 다 추억이 됐다.

옛날 그 시절 윤전기에 나오는 신문을 확인하고자 진주(경남일보)와 마산·창원으로 용달차를 얻어 타고 다녀야 했고, 열악한 신문사 사정으로 기자들이 월급파업(1997)을 하기도 했었지만 이제 그러한 피곤과 노곤함은 기억의 뒤편으로 물러났다.

나이든 기자가 들려주는 재미없는 정치얘기가 밥이 되고 안주가 되어 시대를 탓하고 시절을 야속해 하던 젊은 날의 청춘이 이곳 거제신문에 남았다.

간혹 지인을 길에서 만나면 "아직도 거제신문사에 다녀요?"라고 묻는다. 그런 날이면 나도 나에게 되묻는다. 왜 이렇게 긴 시간을 다니고 있는지. 그냥 나는 거제신문이 좋다. 거제신문 대표가 좋은 것도 국장이 좋은 것도 기자가 좋은 것도 아닌 그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거제신문이 나는 좋다. '나 거제신문 출신이다'를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게 한 29년 속에 분명 내가 있다.

거제신문, 29번째 생일 축하하고 내년 30번째에는 내가 더 멋지게 편집해 줄게. 나도 너로 인해, 거제시민 모두가 너로 인해 행복할 수 있게, 곧게 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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