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타임(Korean time)이 있다. 약속시간보다 일부러 늦게 나오는 버릇을 일컫는 말이다. 그때는 제때 오는 사람이 바보취급 받기 일쑤였다. 특히 권력 서열이 높을수록 약속시간보다 늦게 나오기 마련이고, 수직관계 서열이 낮을수록 시간 엄수를 강요당했다. 대표적인 갑질의 형태다.

'갑질(gapjil)'이란 갑을관계에서의 '갑'에 어떤 행동을 뜻하는 접미사인 '질'을 붙여 만든 말로, 권력의 우위에 있는 갑이 권리관계에서 약자인 을에게 하는 부당 행위를 통칭하는 개념이다. 이 용어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대한민국만의 문화로 영어로 번역되지 않는 낱말이다. 그래서 외국에서도 우리말 그대로 표기하여 'gapjil'이라 쓴다. 돈만 있으면 최고라고 생각하는 천박한 졸부들이 만들어 낸 천민자본주의의 전형이다.

부끄럽게도 영국의 한 매체가 한국의 '갑질'과 함께 '개저씨'라는 단어를 소개하면서 세계적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개저씨' 또한 번역되지 못하고 우리말 그대로 'gaejeossi'라 쓰고 있다. 개저씨는 '개'와 '중년의 남성'을 일컫는 두 단어의 합성어로 시대착오적인 언행을 일삼는 무개념의 중장년을 비하하는 말이다. 이를테면 성차별적인 말을 잘못이라고 인식하지 않고 농담처럼 하거나, 자신의 가부장적인 가치관을 주변에 강요하거나, 성폭력·성희롱을 저지르고도 오히려 당당한 '개 같은 아저씨'로 갑질과는 성질이 다소 다르지만 낯 뜨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영국 언론은 갑질을 일컬어 '한국사회의 암묵적 규율'이라고 분석한 것에 대해서는 치가 떨리는 일이지만, 오늘도 방송과 신문을 채우고 있는 갑의 횡포를 보면서 부끄러워해야 한다. 대표적인 갑질인 땅콩회항사건, 백화점 VIP고객이 매장 직원을 무릎 꿇리고 폭행한 것에서 오늘의 미스터피자까지  갑질의 예는 수없이 많다.

갑질로 비난의 대상이 되고 포토라인에 서게 될 때 이들의 공통된 몸짓이 지극히 불쌍한 모습의 연출이다. 오늘도 우리는 이 악어의 눈물에 또 속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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