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철 시민리포터

사는 곳에 따라 신분이 달라진다.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고 말은 나면 제주도로 보내란 말이 있다. 어디에 사느냐에 따라 가치가 다르다. 사람 사는 가치 기준을 어디에 두고 있는지는 몰라도 누구나 편안하게 잘 사는 것을 갈구한다. 잘 산다는 것은 경제가 윤택하고 생활문화가 발달하고 교육혜택을 받을 수 있는 곳이다.

사람이 살면 얼마나 살까? 옛날에는 환갑을 살면 장수했다고 했다. 요즘은 칠십이 환갑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건강관리를 잘한다. 백살을 산다고 해도 먹고 자고 공부하고 일하는 시간을 제하면 자신을 위해 갖는 보람있는 시간은 얼마되지 않는다.

나면 죽어야 하는 자연의 순리 앞에는 어떤 생명체도 거역을 못한다. 몇 백년 살 것 같지만 언제 숨이 다 할지 아무도 모른다. 한평생을 걱정 없이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

마음의 진실이 믿음이다. 사람이 사람을 못 믿는 세상이 됐다. 인면수심이 된 사람을 보면 겁이 난다. 인륜 도덕이 무너지고 온통 난장판이다. 이런 세상에서 살아야 하는 현실을 직감하면서 마음 편하게 살 곳이 없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럴 때마다 조용한 고향생각이 난다. 말년의 인생 길을 고향에서 보냈으면 하는 생각으로 찾았던 내 고향 산골은 옛 살던 집은 간 곳이 없고 모두가 낯설기만 했다. 고향이 이러하니 정붙이고 사는 객지가 이젠 고향처럼 됐다. 그래서 조그마한 농장을 하나 마련했다.

백암산을 등지고 산세가 아름다운 산방산이 앞에 있다. 좌우로 작은 능선이 감싸고 있는 양지 바른 곳이다. 유자·매실·감·밤·대추·석류·포도·앵두·비파 등 철철이 과실을 따먹을 수 있게 나무를 심었다. 그 사이에 당귀·더덕·도라지 등 약초와 채소도 심었다. 꿩이 울고 개울물 소리가 정겹다

그동안 미완성된 진입로며 농장 관리에 많은 투자와 정열을 쏟았다. 처음 몇 해는 재미가 있었다. 노랗게 익은 유자가 탐스럽고 감·밤·대추를 따는 재미도 있었다. 전원주택의 꿈은 환상적이었고 퇴직 날짜만 기다려졌다.

농촌실정이 뼈 빠지게 일을 해도 살기 어렵다. 수확을 앞둔 배추를 갈아엎는 농민의 절망과 한스런 얼굴을 보며 시골을 떠나야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 것만 같다.

농사가 천하지 대본이란 말은 사전 속에서나 찾아 볼 정도로 없어진지 오래다. 벌레에 물리고 가시에 긁혀 고생을 하기도 했다. 농장 이야기만 나오면 가족들은 고개를 돌린다.

창 넓은 모자에 흙 범벅이 된 내 몰골을 보고 '깡통만 들었으면 거지꼴' 이라며 아내는 피식 웃으며 놀린다. 영락없다. 그래도 마음이 편했다.

일도 해보지 않던 약한 몸으로 재미 부쳐 하던 일이 과로 이었던지 관절염이 생겨서 농장은 관리를 포기해야 했다. 거기다가 진입로 문제로 마음이 상하기도 했다.

"농사는 아무나 짖는 것 아니니 팔아 버립시다."

아내의 불평이다. 환상적인 꿈 때문에 돈 잃고 건강 잃었다. 송충이는 솔잎 먹고살아야 한다. 나는 한적한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 팔자는 안인성 싶다.

농촌이 예전같을 줄 알았는데, 그 좋던 인심은 간 곳이 없다. 온 마을이 허물없이 한 집안 식구처럼 다정히 지냈던 고향 시골을 생각 한 것이 잘 못이다. 조용한 숲 속에 환상적인 집을 짖고 살 꿈은 포기했다. 파도소리 정겨운 섬 마을 바닷가에 조개 껍질 같은 집을 짖고 한가롭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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