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수 칼럼위원

▲ 김철수 거제신문 서울지사장

세상은 빛과 그림자가 같이 존재한다. 음과 양, 강과 약, 대와 소, 여름과 겨울, 빈과 부 모든 게 상대적이다. 우리는 짧은 기간에 놀라운 성장을 이뤘다.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뤄낸 것은 자랑스러운 성과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성장이란 영광의 빛에 가려 간과했던 그늘이 짙게 드리워지고 있다.

60년대의 경제개발이나 90년대의 민주화 이후, 우리 사회는 한때 자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 가장 짧은 기간에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루어 낸, 두 마리의 토끼를 한꺼번에 잡았다고 세계 최초의 기록을 자랑했다.

서양사회가 산업혁명과 프랑스 대혁명을 거치면서 수백 년의 유구한 세월에 걸쳐 이룩한 성과를 불과 50년 남짓 짧은 기간에 이룩했으니 자랑할 만도 했다. 아니, 신화의 창조라고 우쭐댔다.

압축 성장으로 이룬 신화 이데올로기는 사회 일부에서 통용됐다. 허나 신화는 허구이거나 소망의 상상적 충족에 불과한 것일 수 있다. 세상에 공짜가 있을 수 없다. 마냥 자랑만 할 것만은 못된다.

성장의 과정에서 소외된 다수에 대한 배려가 없는 성장은, 근본적으로 후진적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정치영역에선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국회의 운영형태를 보면 암담하다. 토론과 동의에 토대한 민주주의의 기본적인 원칙도 잘 지켜지지 않는다. 정치영역의 퇴행성은 선진화의 세계로 나아가는데 발목을 잡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는 가운데 또 하나는 소비가 미덕이 돼버렸다는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생계단계 단위의 소비에 만족하지 못한다. 과잉 소비내지 낭비단계의 소비가 미덕인 사회에서 살고 있다. 쓸모없는 낭비 때문에 가뜩이나 가난한 사회적 존재들이 더 가난해지고, 그로 인해 다른 한쪽은 더욱 부유해지는 사회는 매우 취약하고 위험한 사회다.

압축성장의 결과로 우리는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것을 성취했다. 그러나 그 후유증도 만만찮다. '빨리, 빨리'가 우리를 상징하는 대명사가 된지가 오래다. 근대적인 것과 전 근대적인 것, 현대적인 것이 뒤죽박죽 마구 뒤섞여 있다.

가치관의 정립(定立)이 없이 물질 만능주의의 사상이 도적처럼 자라고 있었다. 여기서 파생된 문제가 심각하다. 과정이야 어떻던 결과만 좋으면 과정의 잘못이 용인 된다는 그릇된 사고방식이 판을 친다. 선악의 구별 없이 한탕주의로 일확천금을 꿈꾸는 배금사상, 부만 축적하면 최상의 대접을 받는 자본주의의 폐해가 고스란히 들어나는 사회풍조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사기꾼이 독버섯처럼 수두룩할 뿐더러 범죄자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난다. 인간의 탐욕이 침전돼 발현되는 불상사가 없어야 되는 것이거늘 탐욕이 기뢰처럼 부유하다가 쇠붙이만 만나면 폭발해 버린다. 이런 뒤죽박죽의 와중에 똑바로 중심을 잡을 수 없는 심장이 약한 사람은 우울증 환자가 되고 차츰 심해져서 심신박약자로 변해서 자살을 기도한다.

도덕이 땅에 떨어졌고 사회정의가 곤두박질 쳤다. 게다가 분배 문제는 부익부 빈익빈이 점점 깊어만 간다. 사회갈등의 양상 또한 복잡해졌다. 기존의 이념, 지역갈등에서 세대간, 빈부 갈등이 더해졌다. 최근 거론되는 금수저·흙수저 같은 수저 계급론은 빈부 갈등의 민낯을 드러냈다. 일자리와 연금을 둘러싸고 세대 갈등도 심해지고 있다.

서둘러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종합처방책을 내놓지 않을 경우 압축 성장의 심각한 후유증을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압축 성장의 그늘을 따뜻한 빛을 비춰서 압축 성장으로 생긴 짙은 그늘을 줄여가는 부단한 노력을 해야 되지 않을까. 그렇지 않고서는 짧은 기간 고도성장에 따른 역사의 반격을 피해가기는 어렵지 않을까. 폭발의 임계(臨界)에 점점 도달하고 있지 않은지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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