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동 주민자치위원회 임춘식 위원장

"과부 마음은 홀아비가 안다고 가난의 설움과 살아생전 부모님에게 잘해주지 못한 아쉬움  이 커 어려운 사람을 보면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먼저 듭니다."

고현동 주민자위원회 임춘식(62) 위원장은 30년간 봉사 활동을 이어 나갈 수 있었던 원동력은 "봉사가 남을 위해 하는 것 같지만 하다 보면 오히려 자신이 얻는 것이 더 많기 때문이라"고 역설했다.

임 위장의 봉사예찬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는 봉사의 진정한 매력은 봉사를 통해 좋은 기운이 결국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 온다고 말했다.

30년 이상 어려운 이웃을 위해 봉사 활동을 하면서 가강 기억이 남는 일을 말해 달라는  질문에 조금의 주저함 없이 독거노인 가정방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18년 동안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매주 독거노인들의 말벗이 되어주고 밑반찬을 챙겨드리는 봉사를 이어가고 있다.

임 위원장은 최근 자신의 봉사 인생에 기억에 남을 만한 일이 또 하나 생겨났다고 자랑했다. 우연히 참석한 모임에서 경제적 어려움으로 결혼식도 못하고 살아가는 다문화 가정이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본능적으로 이들을 위해 좋은 추억을 선물해주고 싶어 다문화가정 합동결혼식 행사를 기획했다.

막상 행사를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이 돈 인데 주민자치위원회 예산으로는 엄두를 낼 수 없어 생각으로만 끝날 수 있었다.

그러나 임 위원장은 궁하면 통한다는 말만 믿고 지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는데 의외로 호응을 많이 해줘서 기부봉사가 또 새로운 기부봉사를 낳는 기적을 경험하게 됐다고 밝혔다.

임 위원장은 가난한 집안의 5남매 장남으로 태어나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중학교도 중도에 포기하고 직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군 제대 이후에는 권현망 멸치잡이 어선 화장을 시작으로 본격 적인 직장인의 길에 접어든 그는 모진 설움과 질책에도 이를 악물고 노력 1년 만에 기관장이 됐다. 이후 6년 정도의 선원 생활을 뒤로하고 조금 더 안정적인 조선소 목공 기술자로 취직했다.

그러나 월급쟁이로는 가난을 벗어날 수 없다고 판단 30세에 목공소를 운영하는 개인 사업을 시작했다.

허나 사업이라는 것이 마음먹은 대로 되면 좋겠지만 대부분 시행착오를 겪기 마련, 처음 몇 년은 수입이 적어 직장 생활로 모은 돈도 바닥이 나고 결국 처자식 땟거리를 걱정해야 할 처지에 몰리기도 했다. 그러나 진짜 고비는 IMF가 터진 그해 연대보증으로 1억2000만원 빚을 안으면서 시작됐다.

시도 때도 없이 독촉하는 빚쟁이 등살에 그땐 죽음이외는 위기를 벗어날 방법이 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비관적 이었다.

그러나 이 지옥 같은 현실에서 버틸 수 있었던 힘은 어려움에 처한 타인을 위한 봉사를 통해 남을 위해 살면 내가 행복해 진다는 깨달음을 얻고 난 뒤 부터라고 밝혔다.

오랜 봉사활동으로 많이 웃고 즐거운 마음으로 살아서 그런지 나이에 비해 동안이라는 말을 듣고 있다는 임 위원장은 지금도 지역 내 3개 봉사 단체에서 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임 위원장은 앞으로 3년 정도 사회단체 봉사 활동을 더 하고 이후엔 가족, 직장 구성원중심의 봉사조직을 만들어 독거노인을 돕는 활동을 이어가고 싶다며 작은 포부를 말했다.

주변에서는 더 큰 봉사를 위해 정치에 입문할 것을 권유하는데 정치를 통한 봉사는 적성에 맞지 않아 오로지 인간적인 정을 필요로 하는 독거노인과 가난 때문에 배움을 이어 가지 못하는 청소년을 돕는 봉사 활동으로 남은 인생을 채워 나갈 것이라고 재삼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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