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장렬 독일 베를린자유대학교 언론학 박사과정

▲ 윤장렬 독일 베를린자유대학교 언론학 박사과정

아무 소리도 하지 않는 아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가 있다. 38개월 된 이 아이는 중년 부부의 늦둥이 외아들이다. 장난감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글자와 숫자에 관심이 많아 눈에 띄는 영어 단어들과 한글을 술술 읽어나간다.

이제 막 세 살이 조금 넘은 아이가 백만 자리 숫자를 읽고, 심지어 한문도 읽을 수 있다. 구구단은 1주일 만에 정복했고, 제법 긴 영어 단어의 스펠링도 막힘이 없다. 이 아이의 능력은 정말 남다르다.

SBS 방송 프로그램,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영재 소년 관영"이 이야기이다. 38개월 관영이는 보기만 해도 대견스럽고 자랑스러운 늦둥이 아들이다. 이런 관영에게 부모는 남다른 능력을 기대하고 있다. 특히 늦둥이 아들의 특별한 재능이 유독 예뻐 보이는 아빠에게 아이는 분명 무언가 남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이다.

그런데 관영이에게 이상한 습관이 하나 있다. 책의 모서리를 자주 갉아먹는다. 그래서 집에 있는 대부분의 책들이 찢기거나 헤져있다. 관영이는 TV를 보거나, 밥을 먹으면서도 책을 갉아먹는다. 한자와 영어를 척척 읽고 쓰는 아이의 능력만큼 습관 또한 남다르다.

방송에서 관영이의 버릇을 지켜본 정신과 전문의는 아이의 영재성보다 행동을 관찰한다. 그리고 오히려 관영이에게 더 큰 문제를 발견하는데, 의사소통 능력이 부족하고, 적정한 반응이 없으며, 나이에 맞는 정서적인 교감이 없다는 지적이다. 책을 갉아먹는 습관은 불안해하거나 초조할 때 손톱을 뜯는 것과 유사하다. 관영이에게 더욱더 심각한 문제는 이 같은 습관보다 또래 아이들에 비해 인지 기능이 뒤쳐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관영이를 위한 전문가 그룹이 등장하고 아이의 인지 능력과 사회성 그리고 정서 교감을 위한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거실에 놓인 TV와 책들은 장난감과 유아 도구들로 바뀌고, 만지고 느끼며 활동하는 소근육 놀이들이 제공된다.

강아지를 통해 다른 아이들과의 관계 형성을 배우고, 시각, 청각, 촉각에 대한 기본적인 자극 놀이를 통해 관영이의 인지 능력이 강화된다. 결국 방송 프로그램 끝자락에서는 점점 호전되는 관영이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참으로 다행이다.

필자는 관영이를 통해 우리 스스로의 모습을 생각해 본다. 영어는 읽을 수 있지만 외국인과 대화가 불가능하거나, 수학 문제는 풀 수 있지만 시험이 끝나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는 공식들, 논술시험에서 높은 점수는 받을 수 있지만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표현하고 전달하기 힘든 우리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성장 시기에 맞는 교육 단계와 과정보다는 남보다 앞서서 배우고, 익혀야 잘했다고 칭찬받고 기뻐했다. 무엇을 배웠고, 익혔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았고, 왜 했는지 그리고 하면서 즐거웠는지 생각할 겨를도 필요도 없었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 한글은 물론 외국어를 배우고, 중학생들은 고등학교 교과과정을 배우기 위해 사설학원을 찾는다. 그리고 대학에 입학하면 학과 공부보다 취업 준비로 도서관을 전전하고 있다. 높은 교육열과 지난친 경쟁심은 심지어 줄넘기 과외 선생님까지 등장하게 했다. 문제는 무엇을, 왜 배우는지 모르는 채 모든 사회적 에너지를 "교육"에 쏟아붓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결과는 씁쓸하다. 무엇을 배웠는지도 모른 채 경쟁에 밀려 대학에 가고, 직장을 다니는게 우리의 현실이다. 그 결과, 사법고시도 패스했던 정치인들이 TV 방송에 나와 동문서답을 하고 있고, 사전에 준비된 멘트 외에는 답변이 불가능한 대통령도 있다. 사람들 앞에서 보이는 것이 중요한 우리 사회는 모르는 것도 아는 척 해야 한다.

특히 사람들 앞에서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남들만큼만 할 수 있으면 안심이 된다. 생각하고 말하는 연습이 학교에서는 물론 직장에서도 불필요한 채, 남들보다 무언가 있어 보이기만 하면 된다. 결국 우리 사회가 영재는 물론, 보통 사람도 바보로 만드는 사회가 되었다.   

TV 방송에서 자신의 생각과 표현을 엄마, 아빠에게 전달하지 못했던 관영이는 달라지고 있다. 정신과 전문의가 진단하고 놀이 치료 교사들이 제공하는 프로그램들이 관영이의 행동과 사고를 또래의 모습으로 되돌려 놓고 있다.

우리에게도 관영이와 같은 진단과 치료가 필요하다. 경쟁 사회에서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부족한지 인식하지 못한 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지나친 교육열이 아닌, 나 자신에게 적합한 교육이 요구될 때이다. 매일같이 무언가 배우고 익히고 있지만, 정작 자신의 생각과 표현을 타인에게 올바로 전달할 수 있는지 반문하게 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도 관영이처럼 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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