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2회 현충일 추념식, 거제시 충혼탑서 거행…500여명 시민 대거 참석

모른 척 돌아서 가면 가시밭길 걷지 않아도 되었으련만
당신은 어찌하여 푸른 목숨 잘라내는 그 길 택하셨습니까?
시린 새벽 공기 가르며 무사귀환을 빌었던 주름 깊은 어머니의 아들이었는데
바람소리에도 행여 님일까 문지방 황급히 넘던 눈물 많은 아내의 남편이었는데
기억하지 못할 얼굴 어린자식 가슴에 새기로 홀연히 떠나버린
희미해진 딸의 아버지였는데 무슨 일로 당신은 소식이 없으십니까.

…중략 <유연숙 詩 '넋은 별이 되고'> 

▲ 제62회 현충일 추념식이 지난 6일 거제시충혼탑에서 권민호 거제시장과 김한표 국회의원을 비롯한 전몰군경유족회·각 기관단체장·500여명의 시민 등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이번 현충일 기념식은 하청·연초·일운면과 장승포동에서도 국가유공자·유족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1950년 6월25일, 민족상잔의 비극은 우리 국민전체에 잊지못할 상처를 남겼다. 67년이라는 지난 시간 속에서도 상처는 흉터로 자리잡지 못한다. 아버지를, 동생을, 아들을 잃은 사람들의 그리움엔 아직도 피가 흐른다.

앞세운 자식 향한 어머니의 그리움은 남은 자식에게, 남편을 향한 보고픔은 아비 잃은 아들에게, 형제의 부재는 남은 동생들에게 그렇게 회자되고 회자돼 그들의 가슴에 각인돼 있다. 어른의 위패 앞 동생의, 조카의, 아들의 보고픔과 그리움은 향 사르는 손끝 떨림으로 머문다.위패 앞의 이름이 손짓한다. 잘 왔다고. 보고팠다고.

오전 10시 정각 대한민국 이남(以南)전역에서 울려 퍼지는 사이렌소리에 가신 님을 위한 남은 이의 고개는 떨궈진다. 남은 자의 감사의 묵념이 진행된다.

제62회 현충일 추념식이 지난 6일 거제시충혼탑에서 500여명의 시민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하게 진행됐다. 권민호 거제시장, 김한표 국회의원을 비롯한 전몰군경유족회 회원 및 각 기관단체장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권민호 거제시장은 추념사를 통해 "이분들의 거룩한 희생이 없었더라면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번영도 없을 것이다. 나라를 위해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았던 선열들께 한없는 존경과 감사를 드린다"고 인사를 전하면서 "우리 거제는 지금 도전과 변화의 시기를 맞고 있다. 시민 여러분의 힘과 지혜를 모아 더 큰 거제를 만드는 것이 여기 잠들어 계신 분들의 거룩한 뜻을 받들고, 시대가 우리에게 부여한 역사적 소명을 완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우리 거제가 그 큰 꿈 이뤄내고 조국통일과 번영된 내일의 중심에 설 수 있도록 26만 시민 여러분께서도 함께 힘찬 호응을 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장에는 어린 친구들의 모습도 많이 볼 수 있었다. '군사경찰'이라는 학교동아리활동을 펼치고 있다는 상문고 2학년 변현준·류명진 학생은 헌화와 분향에 참석하며 순국선열의 충정에 감사를 보냈다.

변현준 학생은 "같이 온 친구와 일주일 전부터 현충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오늘 함께 왔다"며 "대한민국의 군인이 꿈인데 적어도 이 나라의 군인이 되려면 우리나라를 지켜주신 분들께 감사하고 이런 작은 추모로라도 보답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는 말로 참석의 이유를 밝혔다.

이 말에 '아직도 내 나라 내 조국엔 이런 생각을 하는 젊은이가 있다. 어른들의 희생을, 나라에 대한 충정을 감사하는 젊은이가 내 옆에서 서 있다'는 생각으로 새삼 감사하다.

66년 전 인력수출로 독일에 간호사로 가 30년을 보냈다고 자신을 소개한 백선기(83·고현동)씨는 "3년 전에 고국으로 돌아왔다. 희생된 분들의 붉은 피가 아직도 식지 않고 흐르고 있는데 국민들이 잊어버리고 추념식에 아무도 안 온다면 저분들이 원통해 하실 것 같아 이렇게 왔다"면서 "우리는 지난세월을 너무 빨리 잊어버리는 것 같다. 6.25는 나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고 말했다.

그는 "30살에 독일에 가서 80이 돼 조국에 돌아왔는데 조국은 나를 잊었더라. 모두가 잊었더라"며 "6.25의 참상을 잊지 말아야 한다. 되돌아봐야 한다. 자유와 평화가 당연한 것이 되어선 안된다. 다시 한번 되돌아 봐야 한다. 그래야 이런 일이 또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헌화와 분향 뒤 이들을 이끄는 봉안각. 총 1050위의 위패가 봉안돼 있다. "삼촌의 큰아버지가 계신다"며 조카의 손을 잡고 한 손을 높이 들어 한 쪽을 가리키는 반성규(44)씨.

아버지 10살, 큰아버지 22살. 길 떠나는 형님은 10살짜리 어린 동생을 향해 가족을 챙기라는 당부를 남긴다. 그리고 그해 10월 그의 어머니 손엔 다 키운 아들의 전사통지서가 전달됐다.

반씨는 "반주영, 큰아버지다. 할머니 살아생전 늘 큰아들의 부재를 가슴 아파하셨다. 현충일이 예전 같은 분위기는 아니지만 아이들에게나 우리 가족에게 큰아버지는 가슴 뿌듯한 존재다. 이분이, 아니 이분들이 있어서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는 것을 우리는 안다"고 말하며 위패를 향해 아이의 손을 흔들어 보인다.

67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세월이 약이라고 하지만 흘러나오는 애국가에 그들을 위한 헌시(獻詩)는 유족들의 눈가에 아직도 이슬을 맺히게 한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이 평화와 자유가 누군가의 고귀한 희생을 딛고 이룬 것임을 작은 이 행사장에서도 엿볼 수 있었다.

한편 각 지역에서도 현충일 추념식이 진행됐다. 하청면(면장 김성겸)은 하청출신 전몰호국용서 64위패가 모셔져 있는 하청충혼묘지에서, 장승포동(동장 서창섭)은 장승포군경합동묘지에서, 연초면(면장 옥상종)은 연초면 충혼묘지에서 순국선열의 희생정신을 기리며 국가유공자와 유족들을 위로했다.

저작권자 © 거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