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에게는 김덕생(金德生)이라는 일급 호위무사가 있었다. 태종이 임금이 되기 전에 사냥을 나갔다가 호랑이의 습격을 받자 김덕생이 활을 쏘아 호랑이를 죽이고 그를 구해낸 일이 있었다. 이 일로 두터운 신임을 얻게 된다. 태종이 즉위하고 얼마 되지 않아 임금이 후원에 있을 때 호랑이가 나타나 덮치려 했다.

실록에 호랑이의 궁궐침입 기사가 여러 번 나오는 것으로 보아 당시 인왕산이나 북한산에 호랑이가 많았던 모양이다. 모두가 놀라 자빠질 때 김덕생이 활을 쏘아 호랑이를 제압했다. 곧 김덕생의 사호사건(射虎事件)의 전말이다.

임금의 생명을 구해 주었으니 상금과 높은 벼슬은 따 놓은 당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엉뚱하게도 이 일로 오히려 사형을 당하고 만다. 임금을 구했다는 결과는 좋았다하더라도 임금을 향해 방시(放矢)한 것은 용납될 수 없는 대역죄라는 것이다. 임금을 살린 결과와 실리보다는, 임금을 향해 활을 쏘아서는 안된다는 과정과 원칙을 더 중히 여긴 것이 당시 선비들의 모럴이며 한국적 가치였다.

영국의 관공서에는 어떤 일에 시간이 걸리고 까다롭지만 반드시 절차를 거쳐야하는 문서는 붉은 테이프로 묶어두는데 이를 레드 테이프(Red tape)라 한다. 레드 테이프에 묶인 서류는 원칙에 따라 엄정한 절차를 거쳐야 실현가능해진다.

문재인 정부는 인사 검증에 있어 '5대 비리(위장전입·병역면탈·세금탈루·부동산투기·논문표절) 배제원칙'을 내세웠다. 정말 손뼉 칠 일이다. 그런데 이를 두고 어느 국회의원이 '5대 비리는 잘못된 것이다. 여기에 안 걸릴 국회의원이 없다'라니 이게 무슨 말인가? 또한 5대 비리에 걸리기는 하지만 능력이 아까우니 나라를 위해 중히 써야한다는 논리 또한 황당하다.

적어도 나라의 지도자가 되려면 충실한 자기관리와 사회에 대한 책임과 국민의 의무를 모범적으로 실천해야하는 높은 도덕성(노블레스 오블리주)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원칙이 없으면 변덕의 지배를 받게 됨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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