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현수막의 범람 속에서도 불법의 자리에 붙어 떳떳하게 바람에 휘날릴 수 있는 것은 공익(公益)의 이름을 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한때 범람하던 아파트 분양광고 현수막이 철퇴를 맞았지만 행정공고 현수막은 주민을 위하고 거제시민의 위한다는 명분으로 지정 게시대를 벗어나 여기저기 붙어있다.

'공익'이기에 이 행위는 합법이다. 주민설명회·세금납부·사업·시(市) 행사·동(洞) 행사 등 내용도 가지각색이다. 알리고 싶은 것이 많으니 알록달록 주목을 끌 수 있는 색깔로 꾸몄다.

고현동 시내를 가로지르는 현수막, 아무나 붙일 수 없는 위치에서 보란 듯이 휘날리는 현수막을 바라보며 김용훈(63·고현동)씨는 한참동안 서 있어야 했다.

해가 거듭되면 될수록 한글이 한글같지가 않다. 분명 현수막에 써 있는 글은 한글인데 영 이해가 되질않는다. 영어 표현에 이어 한자 표현, 행정에서만 쓰는 고난도(高難度) 용어까지, 현수막을 바라보다 저절로 고개가 어깨로 기울어지는 것이다.

'2017년 안전한 보행환경 조성사업관련 주민협의체 공개모집' 붙여가며 거제시에서는 무언가에 관련된 공개모집을 하는 모양인데 모를 일이다.

김씨는 "'안전한 보행환경 조성사업'을 하는 모양인데 그 사업이 뭔지를 한참 생각했다. 안전하게 보행? 차도를 없애나? 가로수 등을 갈아 끼우나? 그러다가 지난번 신문에서 읽었던 기사가 생각났다"며 "행정의 공시나 공고문은 한자나 전문용어가 많아 쉽게 이해되지 않을 때가 있다. 이렇게 현수막을 달아서 공개모집을 하는 것은, 해야 하는 이유가 있어서겠지만 보고 읽는 사람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아마도 '안전한 보행환경 조성사업'이라는 말은 행정하는 사람들이 붙인 사업명인 것 같은데 이것이 어떤 뜻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이렇게만 걸려 있으니 안타깝다. 지나가는 다른 사람에게 이 사업을 물어봐도 아무도 몰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 줄 현수막에 모든 것을 다 포함시킬 수는 없겠지만 이런 식의 홍보는 그냥 '이 사업 홍보했다'라는 '눈 가리고 아웅'으로 느껴졌다. 불법의 자리에 공익의 이름으로 버젓이 낸 고시·공고가 조금 더 이해되기 쉽도록 접근할 수 없는지. 그런 행정으로 바뀌는 것이 정말로 그렇게 어려운지 묻고 싶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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