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미셀 바스키아 (미국·1960년 12월22일∼1988년 8월12일)

지난달 18일 미국의 낙서화가 '장 미셀 바스키아'의 작품 한 점이 뉴욕의 소더비 경매에서 1억1050만달러(126억9925만원)에 일본의 미술품 수집가에게 낙찰됐다. '무제(Untitled)'라는 제목의 작품으로 그의 작품 중 최고가였으며 미국 화가의 작품 중 최고 낙찰가로 기록될 것 같다.

장 미셀 바스키아. 어릴 적 엄마 손을 잡고 미술관에 갔다가 피카소의 그림을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엄마의 모습을 본 뒤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 그는 80년대 뉴욕 미술계의 떠오르는 샛별로 스타덤에 올랐다.

낙서를 예술로, 장난을 고상함으로 만들어 버린 거리의 자유로운 영혼, 검은 피카소로 불리웠던 바스키아는 어려서부터 미술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그는 16살 무렵 SAMO라는 그래피티 그룹을 결성해 맨하튼 외벽을 채워가기 시작했는데 SAMO는 훗날 낙서 미술가가 된 알디아즈와 함께 마리화나를 피우다가 창안한 것이라고 한다.

바스키아는 짧은 생을 살며 약 1000개의 페인팅과 1500개의 드로잉을 남겼으며 원색을 즐겨 사용했고 특히 초록색을 좋아했다. 흑인으로 받았던 차별이 작품에 투영돼 있고 사람의 형상을 왜곡시켜 표현한 그의 그림은 보는 이로 하여금 당혹감과 함께 신선한 충격을 느끼게 한다.

자유분방하고 비형식적인 그의 작품이 당시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데는 그렇게 오랜 시간을 필요치 않았다. 앤디 워홀과의 다양한 형태의 공동작업들 또한 당대의 뛰어난 작가들과의 교류는 그가 가진 재능을 더욱 빛나게 하는 한편 그를 세계가 주목하는 작가로 성장해 나가게 했다.

특히 앤디워홀과의 관계에 대한 세간의 숱한 오해에도 불구하고 앤디 워홀과 바스키아는 무척이나 가까운 사이였고, 워홀은 바스키아에게 있어서 커다란 정신적 지주였다. 1987년 2월 앤디워홀의 죽음 이후 바스키아는 거의 모든 전시 계획을 중단했으며, 그 역시 1988년 여름, 뉴욕의 자택에서 코카인 중독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때 그는 27살에 불과했다.

품격과 품위를 중요시 하고 예술을 위한 예술에 열광하던 서구사회의 기존 관념에 낙서라는 격이 떨어지는 행위를 통해 오랫동안 견고히 쌓아왔던 예술의 장벽을 허물어 버렸으며 인간에 대한 비판과 오히려 그 깊이에 대한 탐구를 형상화 한 한편 새로운 것에 목말라 하던 미술계에 돌파구를 만들어 주었던 장 미셀 바스키아.

그가 세상을 떠난지 30년이 지났다. 이번 작품의 낙찰자는 일본 기업가 겸 미술품 수집가인 마에자와 유사쿠(前澤友作·41)로 밝혀졌다. 그는 이 작품을 일본 지바(千葉)에 있는 자신의 미술관에 전시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전에도 바스키아의 작품 '무제, 1982'를 5730만 달러(648억5732만원)에 사들였었는데 당시에는 이 가격이 바스키아 작품의 최고 낙찰 가격이었다 한다.

일본의 미술관들은 생각보다 많은 서양미술품들을 소장하고 있다. 그림을 하는 사람으로서는 참으로 부러운 일이다. 하지만 유난히도 서양인들을 좋아 하는 일본은 알아야 한다. 바스키아 작품의 바탕에는 차별과 형식에 대한 파괴, 자유로운 인간에 대한 갈망이 깔려 있음을, 사람이 그림 보다 소중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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