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광 칼럼위원

▲ 김미광 전 고등학교 교사

옛날에 어떤 한 아가씨가 있었다. 그녀는 사막에 사는 한 청년을 만나 사랑에 빠졌고, 그 청년과 결혼하여 사막에 살게 되었다. 처음 얼마 동안은 사랑 때문에 주변 환경이 보이지 않았다.황량하고 외로운 사막이든, 뜨거운 모래바람이 불든 사랑하는 이와 함께 있는 것이 그녀의 눈과 귀를 막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드넓은 사막이 보이기 시작했고 외로움에 괴로워하다가 친정어머니에게 한 통의 편지를 썼다. “어머니, 여기 사막은 정말 외롭고 끔찍한 곳입니다. 너무도 외롭고 메말라 사람이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저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곧 그녀의 친정어머니에게서 짧은 답장이 왔다. “얘야, 두 사람이 감옥의 철장 속에 갇혀있었다. 같은 감옥이었지만 한 사람은 행복했고, 한 사람은 불행했다. 불행한 사람은 철창 속에서 줄곧 땅바닥의 진흙만 바라보았고, 행복한 사람은 철창 속에서 하늘의 빛나는 별을 보았단다.” 어머니가 보내주신 편지의 의미를 깨닫게 된 아가씨는 진흙을 보지 않고 별을 보기로 생각했다.

그녀는 사막의 꽃인 선인장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고, 주변 원주민의 생활 습관과 풍습에 대해 알고 그들과 어울리며 그들의 삶을 기록했다. 그리고 드디어 그녀는 사막 전문가가 되어 사막에 관한 책을 쓰게 되었다.

사막이라는 환경은 바뀌지 않았다. 다만 그 사막을 바라보는 사람의 눈이 바뀐 것뿐이다.

우리는 지역은 지금 사상 유래 없는 어려운 시기에 처해있다. 개인적인 어려움에 처해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직장이나 가정에서 혹은 경제적, 심리적인 갈등과 고통에 처해있을 수도 있다. 우리는 누구나 긴 인생을 살아가면서 내가 선택하지 않은, 피하지 못하는 어려움과 절망과 쓰라린 외로움을 맞이한다. 때로는 외부세계로부터가 아니라 나의 내면이 깜깜하고 절망적이어서 나의 목을 거세게 조르고 있는 중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종류의 고통이든 우리 자신의 시야만 다르게 가진다면 새로운 삶의 도약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여러 선현(先賢)들의 경험과 그들이 남긴 삶의 발자취와 기록으로 우리는 알고 있다. 문제는 우리가 그것을 우리의 삶에 어떻게 적용하느냐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이나 고통의 뒷면을 볼 수만 있다면 참으로 우리의 삶은 발전하고 우리는 성장할 것이나 문제는 그렇지 못하다는데 있다. 남을 볼 필요 없이 일단 내 자신도 좁은 시야로 딱 내 앞만 보는 사람이다. 멀리 보거나 깊이도 보지 못하고 얇은 양철 조각마냥 금세 뜨거워졌다 차가워져서 일희일비(一喜一悲) 하니 누구에게 무엇을 조언할 수 있겠는가마는 나는 그냥 원리를 말해주고 싶을 뿐이다.

지금 가장 당신을 고통스럽게 하고 괴롭히는 환경은 무엇인가? 누가 나를 가장 힘들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는가? 한번 깊이 생각해서 적어보자. 적는 것은 막연한 것을 구체화시켜서 극복하고 이길 수 있게 해주는 장점이 있다. 적다보면 사실 문제나 상황이 별 거 아닐 수도 있다.

환경이나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내 시야가 좁고 내 소견이 좁아서 생긴 문제 일수도 있다. 문제는 풀어야 제 맛이다. 생각은 생각을 낳고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게 한다. 막연함은 실제보다 훨씬 더 고통을 커 보이게 하므로 더 불안하고 더 두렵다. 그러니 문제를 딱 내 눈앞에 보이도록 명확하게 풀어놓아라.

혹시, 그 환경이나 고통이 사막과 같이 결코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내가 어찌해도 바뀌지 않을 것이라면, 환경이나 고통에 굴복하지 말고 한번쯤 거꾸로 생각해서 그 고통이나 괴로움이 내게 줄 수 있는 유익을 적어보는 것을 어떨까. 요즘 말로 ‘1’도 유익하지 않는 환경이나 고난은 없을 것이다.

내 힘으로는 나를 바꿀 수 없고, 환경과 사람을 바꿀 수 없다면, 나의 시야를 바꾸는 방법을 써보자. 사막을 보지 말고 사막에 있는 선인장을 보고, 그 황량함을 오히려 성찰의 기회로 삼아보자. 어쩌면 그 황량함 가운데서 진정한 친구를 만날 수도 있고 또 다른 깊은 나를 만나게 될 수 도 있다.

누구에게나 힘들지 않은 고통은 없다. 누구든 한가지쯤은 숨조차도 쉴 수 없고, 말로도 다 할 수 없는 상처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똑같은 상처도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볼 수는 있다. 나의 상처를 긍정과 자기 성장의 눈으로 보는 시야를 가져보자. 그러면 실제로 사막과 같이 황량하고 외로운 나의 삶이 푸른 초장같이 바뀔지 누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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