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광지 수필가

▲ 황광지 수필가

강 코디네이터는 익숙하게 군지상네 집으로 들어서서 전혀 어색하지 않게 일행들을 안내했다. 마치 자기 집처럼 편안해 보였다.

곧 정감 어린 환영회가 시작됐다. 한국에서 간 12명의 연수단은 동네 사람들이 분담해 요리한 상차림을 보며 흥감한 말들을 쏟아냈다.

흔히 일본 사람들은 음식을 접시에 발라놓은 것처럼 쪼금씩 차린다는 말은 무색하게 됐다. 유부초밥이나 김밥도 푸짐했고, 어묵탕도 냄비에 한가득 했다.

코디네이터는 요리를 해온 사람들을 소개했다. 집주인 군지상 부부, 옆집에 사는 이가상, 그 옆집에 사는 마쯔이상, 그리고 앞집에 사는 사또상 부부. 나는 그들의 나이를 듣고 깜짝 놀라며 바로 꼬리를 내리고 언니들에게 서둘러 사과했다.

군지상이 64세, 이가상은 69세, 마쯔이상은 65세, 사또상이 64세였다. 62세인 나는 엄청 젊게 보이는 그들 앞에서 잠시나마 나이든 허세를 부렸던 것 같아 정중하게 허리를 굽혔다. 방문한 한국사람은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젊은 사람들이지만, 그들은 손님에 대한 지극정성의 예를 갖춰 대접했다.

내가 듣기로는 일본 사람들은 철저하게 계산해 자기 것은 자기가 치르고 남에게 신세를 지는 것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정이 많다고 소문난 한국에서조차도 이제는 집에서 음식을 만들고 손님들 초대하는 문화가 사라진지 오래된 거 같은데. 일본에서 상다리가 부러지려는 대접을 받다니 참 모를 일이었다.

우리는 3박4일 숙박도 나눠서 홈스테이를 하게 됐다. 이가상 집에 여자 2명, 사또상 집에 여자 3명, 남자 7명과 코디네이터까지 8명은 군자상 집에 배정됐다. 마쯔이상은 허리가 좋지 않아 숙박을 담당하지 않았다.

군지상 부부와 딸 마끼까지 참 대단한 식구들이었다. 넓지도 않은 집에 남자가 버글버글한 상황을 잘도 대처했다. 사또상 집에 배정된 나는 부부의 세심한 배려에 몸 둘 바를 모를 지경이었다. 남편 분은 매일 아침 일찍 답사해 우리를 안내해줬다. 부부의 친절에 매료돼 우리는 손짓발짓, 짧은 일어·영어를 동원해 3박4일의 정을 톡톡히 쌓을 수 있었다.

군지상은 한국과 일본이 역사적으로나 국가적 차원에서는 갈등관계를 겪고 있지만 민간에서는 교류하며 인간과 환경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15년 전에 WE21JAPAN이라는 여성운동단체를 설립해 리사이클 운동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아름다운가게와 비슷한 성격의 리사이클 매장을 운영해 수익금으로는 아시아 다른 국가의 여성들을 지원하고 있다.

우리 연수단은 자활사업에서 자원재활용사업단을 맡고 있는 실무자들로 구성됐다. 아름다운가게에도 관여하고 있는 나로서는 그 매장과 물류창고가 조직적으로 운영되는 것이 예사롭지 않았다. 또한 자원재활용사업의 도약을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데 있어서도 부러운 게 많았다.

더불어 사는 인간, 보존해야 하는 환경에 대해 군지상의 뜻이 동네 사람들을 동화시켰다고 한다. 사람들이 봉사자로 활동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줬고, 생각을 열게 했다. 일본에서 공부를 계속하고 있는 강 코디네이터를 앞세워 한국과도 교류하게 됐다.

그는 '미력(微力)은 무력(無力)이 아니다'란 철학을 지니고 있다. 약한 인간의 힘도, 작은 물건 하나도, 조촐한 환경까지도 소중히 다뤄져야 함을 주장한다. 이웃과 소통하기 위해 자동차를 세워두고 골목길을 걸어 전철역으로 향하는 군지상의 발걸음에도 메시지를 담고 있는 듯하다. 그는 주변의 미력한 힘을 모아 쓸모있게 만들고 꿈을 실현하게 했다.     <2014년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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