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계수 칼럼위원

▲ 김계수 거제시외식업지부 사무국장

틈 없던 틈이 생겼다. 틈이라고는 없던 콘크리트 바닥, 발 뻗을 곳을 찾은 민들레가 환하다. 어쩌다가 바닥은 꽃씨 내릴 틈을 허락했을까? 수분 없는 틈을 아랑곳 않는 민들레도, 마음 내릴 자리를 내어 준 틈도 미소로 서로 기웃거린다.

바람에 이끌려 떠도는 씨앗을 발견한 바닥이 먼저 자신의 몸 한 쪽을 내었으리라. 불편하고 불안한 사이를 내어주는 동안 씨앗은 얼굴을 붉히며 기다렸겠지. 그런 홀씨를 더욱 끌어 당겨 사람들의 무거운 발목으로부터 구했으리라. 서로를 당기는 힘이 그대로 뿌리가 되고 한 몸이 되어 드디어 편안해졌을 틈 하나, 감히 피해서 나의 걸음을 없애고 엎드려 경배한다.

'틈'이라는 단어는 부정과 긍정의 양면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틈은 어떤 상황에 발생되는가에 따라서 되돌릴 수 없는 허점이 되기도 하고, 관계의 갈라짐, 상처이고 과오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서로 다른 성질이 다름을 고스란히 온 몸으로 스며들게 하는 '틈'도 있다.

연두 잎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과 햇빛, 창 틈 사이로 몰래 드는 달빛, 돌 사이를 비집고 피어나는 풀꽃, 구멍 난 돌담 사이로 자유롭게 드나드는 바람, 암벽 사이에서 솟아나는 샘, 꽉 박혔던 나무와 못 사이에 생기는 세월의 흔적, 시멘트 바닥에서도 피어나는 꽃들이 그것이다. 다른 하나를 오롯이 스며들게 하는 틈을 만들어 주기에 가능한 것들이다.

세차게 부는 바람에도 돌담이 무너지지 않는 것은 바람이 지나는 작은 틈을 돌담이 내어 주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틈은 길이다. 서로의 숨이 되어 다시 살아가는 과정이다. 서로가 서로를 붙잡아 주고 천천히 스미어 하나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틈이다.

그래서 결국 한 쪽의 강한 성질은 없어지고 단단한 마음 위에 부드러운 꽃이 피는 것이다. 그러니까 바닥에 난 작은 구멍 때문에 저수지가 무너졌다고 할 것이 아니라, 이전처럼 흐르고 싶었던 물줄기의 욕망들이 작은 구멍을 통해 이뤄졌다고 하면 너무 비약일까.

사람 사이에도 틈이 있다. 완벽하지 못하고 무언가 허술한 사람을 두고 틈이 많다고 한다. 적당히 무시하고 쉽게 상대해도 마음에 무리가 가지 않는 사람을 두고도 틈이 있다고 한다. 이전에는 그런 사람이 많았던 듯싶다. 그래도 쉽게 웃을 수 있었지 않았는가. 상대의 틈을 보고 나의 틈도 편안하게 내어줄 수 있지 않았는가.

틈이 없다. 아니다. 있는 틈을 내어주지 않는다. 서로의 마음 하나 뿌리 내릴 사이가 없다. 틈이라도 내어주면 당장 지는 것처럼 단단한 바위 같은 서로의 사이를 부지런히 메우고 산다. 도시의 빈 틈은 실패한 사람들이나 몰리는 구석 같은 것. 구석에 가지 않으려는 사람들은 경쟁에서 뒤떨어진 사람이 될까봐 더욱 숨 막히게 틈을 메우려 한다. 서로에게 틈이 없으니 네가 내게, 내가 너에게 갈 수 있는 길이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남녀사이에 사랑을 시작할 때도 너무 완벽한 것처럼 꾸며대면 사랑이 싹트지 않는다. 좀 허술하고 틈이 보여야 그 사이에 첫 마음을 조심스럽게 놓아주게 되고, 그 마음들이 세월이 지나면서 붉고 강렬한 사랑이 피지 않던가. 그러나 틈은 서로에게 상처가 되기도 할 것이며, 어떤 틈은 내가 바라는 것처럼 메꾸어지지 않고 서로를 더 멀어지게 할 균열이 되기도 할 것이리라. 그럴지언정 틈을 가지고 싶다.

허술한 것일수록 좋다. 계산하여 사이를 정확하게 꾸며놓은 틈은 편안함이 없다. 깊은 산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한 줄기 물처럼 계산되지 않고 그냥 내어주는 저절로 스며드는 틈이 좋다. 어쩔 수 없이 보이는 틈이었다가 보여 줌으로서 오히려 메워지고 이루어지는 사랑을 탐하기도 하면서 틈, 허술한 틈을 슬며시 내어주는 사람을 가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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