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종 때 이세정(李世精)은 경학에 정통했으나 과거만 보면 떨어지자 과거를 단념하고 많은 제자들을 길렀다. 출세한 제자들이 힘을 써 스승을 청양현감이 되게 했지만 워낙 융통성 없는 위인이라 고을이 잘 다스려질 리 없었다.

훗날 벼슬이 우찬성까지 오른 최숙생(崔叔生)이 충청관찰사로 부임하자 제자들이 찾아가 청양현감은 우리 스승으로 학문은 풍부하나 물정에 어두우니 잘 챙겨달라고 당부를 했다. 그런데 최공이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아 성적이 나쁜 청양현감을 쫓아내고 말았다. 그 후 최공이 관찰사를 그만 두고 서울로 돌아왔을 때 이세정의 제자들이 몰려가 따졌다. 그때 최공이 "자네들 선생은 뱃속이 비어 있어"하고 말했다. "우리 선생님은 배에 육경이 가득한데 왜 비어 있단 말입니까?" 그러자 최공이 대답하기를 "이공의 뱃속에 있던 육경을 자네들이 다 파먹었으니 비었지. 이제 이공의 똥은 개도 먹지 않을 걸세"

스승의 어원은 여자무당에서 왔다. 무격(巫覡)이라고 하면 무(巫)는 여자무당을, 격(覡)은 박수 곧 남자무당을 말한다. 옛 문헌에서는 무(巫)를 '스승 무'라 했고, 격(覡)을 '화랑이 격'이라 했다. 여자무당을 스승이라 한 것은 모계사회에서 여자무당은 대단한 권력자임을 알 수 있고, 남자무당은 신라시대 화랑에서 유래되었던 것 같다. 또 다른 어원으로는 최세진의 〈훈몽자회〉에 불교의 중을 '스승(師)'이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고려시대부터 중을 존경해서 부를 때 'ㅅ.승(師僧)' 혹은 '사(師)님'이라 했는데, ㅅ.승에서 스승이, 사님에서 스님으로 변한 것으로 보고 있다.

서양에서는 우리의 '군사부일체'처럼 스승과 성직자와 아버지를 동일하게 여긴다. 가톨릭 신부를 영어로 '파더(father)'라고 부르는데 히브리어(語) 파더 속에는 '아버지'와 '스승'이라는 뜻이 함께 들어 있다.

오늘날 '스승의 날'은 겨레의 스승이신 세종대왕의 탄신일인 1408년 4월 10일(음력)을 양력으로 환산하여 5월 15일을 기념일로 정한 것이다.

저작권자 © 거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