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철 수필가

▲ 이승철 수필가

보리가 익기 전 식량이 모자라 어렵게 지냈던 시절이 있었다. 이 고비를 넘기가 얼마나 힘들었던지 죽을 힘을 다해 배고픔과 싸워야 했다. 그 고개를 '보릿고개'라 한다.

1950년 한국전쟁으로 온통 폐허가 됐다. 하늘이 노했던지 가뭄과 홍수가 이어져 잦은 흉년으로 굶어 죽는 사람이 많았다. 가을농사가 잘돼도 겨울나기가 어려웠다. 하루에 한 끼 죽이라도 먹는 사람은 그래도 행복했다.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찾아오던 보릿고개가 경제개발 5개년과 잘살아보자던 새마을사업의 기치아래 물러가기 시작했다. '앞으로 15년 후면 우리도 선진국 대열에서 잘 사는 나라가 될 것'이라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다짐은 꿈같은 이야기로만 들렸다.

군부독재니 장기집권이니 하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긴 해도, 미래를 내다보는 현명한 경제정치는 아무도 부정 못할 것이다. 정치가 어떤 것인지는 몰라도 적으로부터 보호받고 백성들을 잘 살게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인생길에도 여러 번의 고개가 있다. 나는 그런 고개를 사십대에 한 번 넘겼고 이제 그 고개를 또 넘는다. 보릿고개보다도 더 어려운 고개다.

지난 추억은 아무리 괴롭고 슬펐더라도 그리움이 남아 있다. 꿈 많은 젊은시절의 보릿고개가 떠나지 않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곳은 고향의 봄이 있고 추억이 있고 사랑이 있고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보리가 피고 익기를 기다리는 마음은 그 어떤 바람 보다 더 기다려지는 즐거움이다. 보리가 익기 시작하면 풋보리를 뜯어다가 볶아서 찐보리밥을 해 먹는다. 그 맛은 아마 이 세상 어떤 음식 보다 맛이 있고 힘이 솟는다.

파란 보료를 깔아주던 보리밭골 순이의 사랑이 종달새의 노래로 들리고 누렇게 익어 가는 맥향(麥香)은 고향의 향기로 일렁인다. 깜부기를 빼 먹던 입가에 그려놓은 산수화를 서로 쳐다보며 웃던 동심의 시절, 밭두렁에는 쑥향기가 옷자락에 젖어있다.

밭가에 있는 뽕나무 오디 찔래순 송기 피비를 뽑아 먹는 것이 고작인 그 시절 휴가 온 철석이 삼촌의 건빵은 온 마을사람들의 신기한 맛거리 였다. 멀쩡한 신을 엿으로 바꿔먹고 쫓겨다니던 동생의 철없는 모습이 봄이 자나가는 문턱에서 그리운 추억으로 일렁인다.

어느 해 보릿고개에 알이 영글기 시작한 썰어진 보리알을 뜯어다가 솥에 볶고 방에 불을 지피고 말려 어머니께서 떡밥을 해주셨다. 삼형제가 된장국에 볼이 미어지도록 먹던 우리들을 보며 "천천히 먹어라 체할라" 하시던 부모님의 마음을 칠십 고개를 넘으면서 이제야 알 것만 같다.

거제도에서 첫 발을 내디딘 공무원 생활의 출·퇴근길에 새마을사업의 새벽종소리가 아무리 고달파도 꿈과 희망을 열어줬다.  연탄 값이 아까워 집사람이 나무를 해와 불을 때고 밥을 지었다.

그 밥만큼 맛이 있는 음식은 먹어보지 못했고, 따사롭고 포근한 잠자리를 자 본 적이 없다. 집사람이 근검절약 하면서 어렵게 모은 재산으로 집을 장만하던 날의 기쁨만큼 즐거운 때는 없었다. 허리를 펴고 살만할 때 그 기쁨과 즐거움도 버리고, 아내는 돌아오지 못할 먼 길을 떠났다.

항상 내 맘 속에 자리잡고 있는 아내의 그리움이 보릿고개 보다 더 아픈 마음의 상처로 남아 세월이 갈수록 연민의 정만 더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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