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중공업 참사 부상자 박철희씨 인터뷰
삼성중공업 참사 부상자 박철희씨 인터뷰
  • 최윤영 기자
  • 승인 2017.05.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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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언제 갈까 하며 내 옆에 있었는데…

타워크레인 움직임이 이상했어요. 작업장에서 근로자들이 이용하는 간이화장실 오물통 2개를 한꺼번에 올렸어요.

화장실이 중간층에 하나 있고 상부에 하나 있는데 보통 하나씩 옮기거든요. 그날은 두 개를 한 번에 들어서 중간에 하나 내리고 다시 올라갔어요. 신호수가 한 데크에 기다리면서 내려놓지 중간에 뭘 또 했다가 그렇게 하는 경우가 없거든요.

위쪽에 신호수가 있었는지도 궁금하고 이상하다 저렇게 안 하는데….

공사기간 단축 압박 때문인지 2개를 한 번에 매달고 와서 풀었다가 하는 게 위험해 보였어요. 마틴 링거 프로젝트가 일정에 쫓겨서 위에서 푸시가 굉장히 심했거든요. 그런 것 때문에 그러나보다 하면서 보고 있는데 올라가다가 갑자기 꽝 하는 소리가 나더라고요.

처음부터 이상하다고 보고 있었기에, 눈앞에 크레인 팔이 떨어지는데 저는 보고 피할 수 있었고 죽음을 면했거든요. 하늘이 시커메지고 위에서 뭐가 막 떨어지더라고요. 저는 옆으로 피했고 우리 동생은 사고를 당했어요.

그래서 일어나 보니까 타워크레인에 깔린 사람들이 보이더라고요. 우리 동생은 그 때까지만 해도 저랑 얘기했어요. 피가 동생에게서 나는 것을 보고 119에 전화하고 어떻게 지혈해야 하는지 물어봤어요.

대형재난 닥치자 모두 당황해 구조지연

회사에서 구조하는 사람들이 올라왔는데 당황해서 무슨 일을 해야 할지를 모르더라고요. 제 동생에게 지혈 좀 해달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제대로 해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기록을 보면 저희가 오후 2시50분에 사고 당했잖아요. 그런데 제 동생이 거의 마지막에 엠블런스 타고 병원(오후 3시51분께 도착함)에 왔을 거에요.

사고 현장에서 아래로 한 사람씩 크레인으로 내리는데 동생이 저랑 말하고 있으니까 상태가 괜찮은 줄 알고 안 내려주는 거에요. 허리 부분에서 피가 많이 난다고 했는데도….

그래서 거의 마지막에 병원으로 왔고요. 제가 엠블런스로 동생이랑 같이 왔는데, 동생이 많이 아프다고 해서 조금만 참아라. 병원 금방 간다 외치면서 응급실 같이 들어왔어요.

그런데 응급실 처지를 못하고 남자들이 여러 명 왔다갔다 하더라고요. 한 시간 있다가 그 남자들이 병원에 혈액이 5개 밖에 없다고 부산으로 가라고 해요.

그동안에 피가 많이 났을 건데 과연 제대로 봉합을 해줬는지…. 안 한 것 같거든요. 동생이 하늘나라 가는 그 순간에도 피가 흥건했어요.

5시 반이 좀 안 된 시각에 부산으로 간다고 해서 나도 같이 가겠다고 했어요. 가다가 심정지가 와서….

의사가 와서 그러더라고요 이거는 숨진 거라고…. 시체가 부패하니까 빨리 사망선고 받아들이고 영안실로 보내자고. 내 동생 하늘나라 잘 가라고 말해주고 제수씨에게 알렸어요.

의지하고 함께했던 동생 먼저 떠나

저는 서울 강서구, 동생은 파주가 집이에요. 한 달에 한 번, 토요일 5시에 일 마치고 집에 가서 하루 쉬고 일요일에 내려오고, 다른 날은 야근과 특근을 정신없이 했어요.

하루 나오면 공수라고 하는데 우리 동생이 해동기업 사무실에서 항상 1등이었어요. 지난달만 해도 화장실(배뇨) 때문에 고생했는데….

아픈 건 참으면 되지만 나이 먹고 화장실 때문에 바지에 오줌 싸면 안 된다며 병원간다고 하루만 빠지고 다 나왔어요. 그렇게 열심히 일만 했는데, 가족들을 위해서 일만 했는데….

개처럼 일만 했는데 비정규직이라서 설움 당했어요. 노동절이라고 협력업체만 나왔거든요. 공기가 급하다고 물도 안 먹고 일해요. 배가 빨리 나가야 한다고 작업자들 쉴 틈도 없이 그냥 밀어 넣어요. 작업환경은 먼지가 탄광 수준이라 마스크 안 하면 숨도 못 쉬고요, 혼재작업이라고 도장·화기·용접·그라인더 한꺼번에 합니다. 원래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거에요.

자식하고 가족을 위해서 거제까지 와서 일하다가, 위험한 행동을 한 것도 아니고 그렇게 죽었는데 대한민국은 1%만 사람이고 나머지는 종인 것 같아요.

여기 오기 전에는 택배를 2년 반 정도 했는데 밥을 못 먹고 일하니까 동생이 여기 내려오면 밥은 먹고 한다더군요. 항상 같이 자고 같이 얘기하고 의지했어요. 언제쯤이면 식구들에 갈 수 있을까, 오늘 저녁에 뭐 먹을까 얘기하고….

그날도 무슨 느낌이 들었는지 나가기가 싫었는데 동생이 일어나 준비하니까 나도 준비하고, 그렇게 의지하고 걔가 내 옆에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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