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우 칼럼위원

나는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어 진다. 아이들은 나를 아버지라 부르고 아내는 자기라고 부른다. 자기라는 호칭 속에는 여보, 남편, 애들 아버지라는 의미가 함께 녹아 있다. 아이들에게 나는 아버지가 되지만, 고향에 계신 아버지에게 나는 자식이 된다. 모두 나를 구성하는 이름들이다.

가정에서의 호칭이 본질적인 것이라면 사회에서 나를 호칭하는 것들은 외양과 관련돼 있다. 회사에서는 과장으로 불린다. 10년차 만년 과장이다. 10년 넘게 과장으로 불리다 보니 동료들도 가끔 헷갈려 한다.

전화통화를 하면서 본인도 모르게 차장이라고 부르는 후배들이 있다. 얼떨결에 차장이라고 불렀다가 곧 본인의 실수를 깨닫고 다시 과장으로 부른다. 나와 같은 또래의 직원들이 모두 차장 직급을 달고 있고, 일부는 팀장까지 맡고 있으니 헷갈릴 만도 하다. 선배들은 일부러 차장이라고 불러준다. 동료에 비해 승진이 늦은 내가 안쓰러운 모양이다.

회사 동료들도 직급을 헷갈려 하니 외부 사람들은 오죽하겠는가. 어떤 사람들은 차장이라 부르고 어떤 사람들은 팀장이라 부른다. 회사 선배들과 마찬가지로 나의 직급을 알고 있으면서 일부러 직급을 높게 불러주는 사람들도 있다. 고맙다. 직급을 높여 불러 주는 게 고마운 게 아니라 그 사람이 나를 괜찮게 평가해주고 있다는 것이 고맙다. 나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면 일부러 직급을 높게 부르지는 않을 테니까.

업무 때문에 전화통화로 첫 대면을 하는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불러야 하느냐고 묻곤 한다. 예전엔 그냥 이름을 부르면 된다고 대답했다. 아직 과장 직급을 달고 있다는 사실이 내심 창피했던 모양이다.

요즘엔 과장이라고 부르면 된다고 대답해준다. 나의 직급을 알고 있는 것이 상대방에게도 편할 것이고, 과장 직책을 달고 있다는 것에 대한 창피함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모 신문사 기자와 저녁을 먹다가 직급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다. 아직 과장 직급을 달고 있다는 사실에 그는 놀라워 했다. 그에게 말했다. 과장이든 차장이든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과장이라는 직책을 처음 달았을 당시, 그 사실을 모르는 외부 사람들이 과장이라 불러주지 않았을 때 서운하고 섭섭했던 감정이 들기도 했다. 그때 과장이라 불러주지 않는 것을 섭섭해 했고, 승진을 시켜주지 않는 회사를 원망하기도 했다. 겉으로 드러나는 외양의 모습에 집착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부르든 상관하지 않는다. 과장이라 불러도 좋고 차장이라 불러도 좋고, 단순히 이름 석 자를 불러도 좋다. 내가 어떻게 불려지느냐 하는 것보다 나 스스로를 어떻게 채워가고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회사 동료들로부터 '이제 승진해야 할 텐데'라는 소리를 가끔 듣는다. 그들에게 난 이렇게 얘기한다. 과장이든 차장이든 그게 뭐가 중요해. 내가 누구냐가 중요하지.

내가 어떤 위치에 있느냐 보나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고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가 내겐 훨씬 중요하고 이것이 내 삶의 척도이다.

사람들이 나를 어떤 직급으로 부르든 상관없다. 나를 어떻게 부르느냐 보다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더 중요하고 값어치 있기 때문이다. 그 사람 참 괜찮아, 참 열정적이야, 정말 착해. 이런 소리가 내겐 더 소중하다. 외양으로 드러난 모습 보다는 본질의 모습이 더 중요하고 값지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나의 맡은바 직무에 충실하고 정의롭게 책무를 다 할 것이다. 정의롭지 못한 행동에는 과감히 '아니다'라고 외칠 것이다. 그것이 나의 본질이니까. 나라의 지도자들도 본질의 자기 역할에 충실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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