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회 경상남도민속예술축제서 동상 수상 - 거제영등민속보존회 박기수 회장

지난 10일과 11일 김해시 대성동고분군 특설무대에서 개최된 제39회 경상남도 민속예술축제에서 거제시 대표로 출전한 거제영등민속보존회(회장 박기수)의 '거제영등오광대'가 동상을 받았다.

이는 우리지역 민속예술 전통성의 인정과 더불어 끊어졌던 거제영등오광대 다섯마당 복원에 대한 노력의 치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박기수(58·고현동) 전수교육 조교는 "2000년도 우연히 찾은 거제영등오광대에 대한 지난기록의 출발이 우리 이름이 됐다. 재현하고자 했던 지난 날의 수고와 노력 덕분에 이제는 제대로 인정받으며 놀 수 있게 된 것 같다"는 말로 소감을 전하며 "지금도 우리는 진행형이다. 끊어졌던 문화를 되살려 진행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나와 후손에게 고마운 일이고 좋은 의미다. 전통놀이가 활성화돼 거제시민이 진정으로 놀 수 있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거제영등오광대를 이끄는 박기수씨는 통영 출신이다. 어린시절 어부(漁夫)인 아버지를 따라 거제로 왔다가 11살 무렵 다시 그 손에 이끌려 통영으로 들어갔다. 24살 대우조선의 근로자로 다시 거제로 돌아오기까지 그의 삶은 녹록치 않았다. 14살 어린아이 앞에 닥친 아버지의 죽음은 생활고로 이어졌고 17살 주경야독을 이어오는 아이에게 내밀어준 통영오광대 어르신들의 손은 따뜻했다.

'운팔(운이 팔)이다'를 웃으며 얘기하는 그에게 그때부터 운이 따랐다. '국풍81'이 열렸던 지난 81년, 22살의 청년 앞에 탈을 쓰고 역할을 맡을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 것이다.

그는 "탈춤이라는 것은 한 사람이 한 역을 하면 30년씩 한다. 춤이 금방 되는 것이 아니어서 '습(習)' 습관이 돼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배우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그만큼 기회가 줄어 긴 인내를 필요로 하는 곳"이라고 말했다.

어찌됐든 그 틈 속에서 주어진 배역에 그는 안착했고 그 역할은 지금도 그의 몫이다. 대우조선에 시험을 치고 통영을 떠나오면서도 그는 공연을 놓지 않았다. 직장에서 동아리를 만들고 활동도 계속했다.

2000년이 되던 그해 드디어 전수교육 조교가 됐다. 그리고 경남유일의 섬지역 오광대로 전해지는 거제영등오광대의 명맥을 찾아 재현을 위한 노력에 힘을 쏟았다.

그는 "경상도는 덧배기 춤과 국거리 장단을 가지고 논다. 고성춤과 통영춤이 다른 것이 아니다. 같은 춤과 가락에 자신들의 지역색이 더해지는 것 뿐"이라며 "고성춤에 문둥이가 한 명이면 진주에서 다섯명이 추는 등의 변화가 있지만 춤이 바뀌는 것이 아니므로 지역마다 변화의 특징을 찾아가야 하는 작업이었다"고 그간의 노력을 설명했다.

'거제영등오광대' 이들의 어깨에 당당히 거제의 전통예술인의 계급장이 달렸다. 그러나 그 무게는 거제의 차디찬 현실만큼 무겁다.

그는 "통영의 대표행사가 있으면 불러오는 통영오광대는 곧 통영이 된다. 자매결연지를 찾을 때도 멸치·충무김밥을 알리는 자리에 함께한다. 통영이 곧 그들이고 그들이 통영인 것이다. 시민들 또한 매일 보는데도 매일 찾는다. 그들이 보여주는 자신들의 문화에 대한 애착이 부러울 때가 많다"며 우리의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또 "아직 거제도는 시민과 놀 지정마당 한 칸이 없다. 거제영등오광대는 우리 거제의 것이고 우리의 자랑이다. 문화 콘텐츠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니기에 우리의 이 작은 날개 짓이 바람이 되고 선전이 되어 시민들의 마음속에 닿길 바란다"는 간절함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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