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창수 칼럼위원

▲ 천창수 지세포제일교회 목사

옛날에 한 지주가 있었다. 머슴 여럿을 두고 일을 하는데 그 중에 한 머슴이 우둔하고 어리석었다. 낫 놓고 기역자를 가르쳐도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주인은 막대기를 하나 가져다가 "미련퉁이 지팡이"라며 주었다.

"너는 천하의 멍청이 놈이다. 그러니 이 지팡이를 가지고 다니다가 너보다 더 멍청한 놈이 보이면 선물로 주거라"

이 사람이 얼마나 멍청한지 그런 선물을 받으면서도 "고맙습니다. 주인님" 했다. 그리고는 이 지팡이를 짚고 돌아다니는데 세월이 지나고 이 주인이 그만 병이 들게 되었다. "아이고 우리 주인님이 아파서 돌아가시게 됐다"고 머슴은 생각했다.

주인이 너무 아파서 고생하니까 이 미련한 머슴이 물었다.

"주인님 이제 아프셔서 가시면 언제 오십니까?"
"야 이 녀석아, 내가 죽는 마당에 오기는 언제 오냐? 내가 다시 올 수 있는 길을 간다면 왜 이렇게 슬퍼하겠느냐, 이 미련퉁이야!"
이 말을 듣고 보니까 주인을 위해 뭔가를 해 드려야 할 것 같았다.
"주인님 이제 다시 못 오시는 길을 가시는데 뭐라도 준비해 드릴까요? 가실 준비는 되었습니까?"

지주는 어이가 없었다.

"야 이 녀석아! 죽는 마당에 준비는 무슨 준비냐! 나는 아파 죽겠다. 이제 그만 좀 하여라."

이 머슴이 생각해 보니까 이틀만 여행을 간다고 해도 "얘야, 주먹밥을 준비해라. 말발굽이 제대로 박혀 있는지 살펴봐라. 말을 튼실하게 먹여라" 하며 하루에도 수십 가지를 시키던 양반이 영원히 못 올 길을 가면서 준비할 것이 없다니 세상에 이런 미련퉁이가 어디 있나 싶었다.

"주인님,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 미련퉁이 지팡이는 당신의 것입니다. 이 지팡이와 함께 가십시오" 했다는 것이다.

그대는 영원을 향해 떠날 준비가 돼 있는가? 4월에는 고난주간도 있고, 부활절도 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지만,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다시 살아나셨다.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은 하나님의 사랑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고, 어떻게 사랑하시는가를 보여주시는 것이 바로 십자가이다.

예수님은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세상에 오셨다.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다. 죄인의 몸을 입고 오셨다. 그리고는 우리 죄를 담당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주셨다. 의로운 피이다. 거룩한 피이다. 그 피를 방울방울 흘려주셔서 우리의 죄를 씻어 주시기로 작정하셨다.

십자가의 죽음은 우리의 죄의 대가라 할 수 있는 영원한 형벌을 받는 곳이었다. 죄의 값은 사망이다. 영원한 죽음이다. 영원한 심판이다. 영원한 하나님의 진노이다. 그것을 대신 받으시기 위하여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그 결과 우리에게 구원의 은혜가 주어졌다.

루터는 이 은혜를 '자리바꿈'이라는 표현으로 설명했다. 예수님의 자리에 우리를 세우고, 우리의 자리에 예수님을 세웠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죄는 더 이상 우리의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것이 되었다.

예수님의 의는 더 이상 예수님의 것이 아니고, 우리의 것이 되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죄인이 되었고, 우리는 의인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런 놀라운 일을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하셨다.

영원을 준비하며 사는 사람이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이다. 하나님은 십자가 위에서 두 팔 벌린 예수님을 통해 "내가 너를 이만큼 사랑한다!"고 말씀하신다. 이 사랑 이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사는 것이 영원을 향한 최고의 준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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