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우 칼럼위원

▲ 이동우 수필가

목련이 지면서 벚꽃을 기다렸다. 순백의 목련과 하얀 벚꽃이 서로 닮았기 때문인지 목련을 바라보는 시선 끝에 걸린 벚나무 가지 때문인지 모르겠다.

목련이 지고 얼마 뒤 벚나무에 연한 홍색의 꽃눈이 솟아났다. 처음엔 쌀 알 만큼이나 작았던 것이 점점 자라 콩알만 해지고 네일아트를 한 여인네의 손톱처럼 변하더니 이내 하얀 꽃잎을 활짝 터뜨리고 말았다.

전날 저녁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던 것이 하룻밤 새 눈이 부실 정도로 하얗게 피어났다.

올해는 벚꽃이 피어나는 걸 꼭 보리라 다짐했다. 연한 홍색의 꽃눈이 어떻게 하얀 꽃잎으로 피어나는지 궁금했다. 꽃눈이 터지면서 하얗게 피어나는 광경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황홀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벚나무를 찾았다. 벚나무 아래서 꽃눈을 올려다보며 꽃이 피어나기를 기다렸다. 밤이 지나고, 하룻밤 새 활짝 피어난 꽃잎을 보면서 그것이 얼마나 무모한 욕심이었는지 깨달았다.

벚꽃이 피고 나서 수시로 꽃을 보러간다. 순수의 결정체 같은 그 모습을 한 번이라도 더 보기 위해서다. 벚꽃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터져 버릴 것만 같다. 꿈속을 거니는 것 같았던 교정의 벚꽃을 떠올리고 사랑했던 사람들과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과 벗들의 얼굴을 떠올린다. 벚꽃 하나하나에 그리운 사람들의 얼굴이 있다.

벚꽃 핀 나무 아래로 사람들이 걷는다. 동네에서 흔히 마주치는 사람들이다. 중년의 남자와 평범한 아줌마가 그 길을 걷는다. 지팡이를 짚고 다소 불편한 걸음으로 천천히 걷는 노인도 있다. 아이를 데리고 나온 젊은 부부는 카메라에 소중한 추억을 담는다. 특이할 것 없는 봄이다.

장승포동에서 양지암공원 쪽 일주도로의 벚꽃 길은 조용하다. 관광명소도 아니고 번화가도 아닌 탓에 찾는 사람이 많지 없다. 동네 주민들끼리 조용하게 즐기는 봄의 명소이다.

가까운 곳에 화려한 벚꽃이 있으니 봄을 만나기 위해 일부러 멀리 나갈 필요가 없다. 집 근처가 온통 봄이다. 멋진 옷을 찾아 입을 필요도 없고 힘들게 도시락을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 봄이 보고 싶으면 아무 때나 밖으로 나와 길을 걸으면 된다. 봄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건 축복이다.

사람들은 봄을 찾아 떠난다. 자동차를 타고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봄꽃을 보러 가기 위해 시간과 돈을 투자한다. 사람들이 봄을 찾아 떠나는 이유는 그곳에 봄이 없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봄은 머물지 못하고 방황한다.

봄은 어느 곳이나 찾아온다. 깊은 산골에도 평평한 들판에도 도시에도 공평하게 봄은 온다. 그러나 어느 곳이나 봄이 머물러 있지는 못한다.

산골이나 들판에 찾아온 봄은 그곳에 머무르며 싹을 돋우고 꽃을 피우고 잎을 자라게 하지만 도시의 봄은 그렇지 못한다. 매연에 찌든 가로수와 몇 평 남짓한 꽃밭에 잠시 머물러 있을 뿐이다. 도시의 봄은 슬프다.

개발과 발전의 집약지인 도시는 봄이 머물러 있을 수 있는 공간을 없앰으로써 봄을 차단했다.

그래도 봄은 사람들에게 따스한 햇살을 비춰주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게 나마 봄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시간에 쫓기고 일에 쫓겨 봄을 느끼지 못한다. '어? 봄인가?' 했다가 '이제 여름인 가봐' 한다. 어쩌면 사람들은 봄이 머물 수 있는 마음까지 닫아 버렸는지도 모른다.

벚꽃을 찍는다. 화려하고 고운 꽃잎을 찍어 사람들에게 보낸다. 편지도 함께 보낸다. 남쪽에 봄이 왔네. 이제 곧 봄이 그곳으로 간다하니 봄이 머물 수 있도록 마음 한 곳 비워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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