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귀식 칼럼위원

▲ 민귀식 새장승포교회 목사

지난 1998년 88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난 한국유리공업주식회사 설립자이신 최태섭(崔泰涉) 회장에 대한 일화 가운데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 서울에 있는 한 은행으로부터 융자를 받아 작은 규모의 사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6·25 전쟁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는 한시바삐 피난길을 떠나야만 했던 상황 속에서 자신이 은행으로부터 빌린 돈을 갚을 기일이 다 된 것을 알고 돈을 준비해 은행으로 뛰어 갔습니다.

은행에 가서 빌린 돈이 든 가방을 열며 빌린 돈을 갚으러 왔다고 하니 은행직원은 최태섭의 언행을 보고는 매우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빌린 돈을 갚겠다고요? 이 전쟁 통에, 융자장부가 어디 있는지도 모릅니다. 장부의 일부는 부산으로 보냈고, 일부는 분실됐습니다. 돈을 빌린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을 갚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마당에… 그래도 갚으시겠어요?"

사실 갚을 돈을 은행 직원에게 준다고 해도 은행 직원이 자기 주머니에 넣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는 상황입니다. 최태섭은 한참 생각하다가 돈을 갚기로 결심을 하고 은행 직원에게 돈을 넘겨주고 돈을 받았다는 영수증을 받았습니다. 은행직원은 최태섭의 뜻에 따라 돈을 받고 은행 직인과 함께 자신의 인감도장을 찍은 영수증을 건네줬습니다.

6·25전쟁이 끝나고 난 이후 최태섭은 가족들을 데리고 제주도로 가서 군납사업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신선한 생선을 공급하는 일을 맡게 돼 갈수록 물량이 많아지자 원양어선을 구입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수중에는 원양어선을 구입할 만한 돈도 없었고 담보할 물권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자신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배를 구입할 수 없었습니다.

최태섭은 사업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부산에 있는 한 은행을 찾아가서 융자를 신청하기로 마음을 먹고 은행을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은행에서는 전쟁이 막 끝난 상황이라 모든 것이 불확실한 입장이었기 때문에 최태섭이 요구하는 융자를 해줄 수가 없었습니다.

융자를 받고자 했던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게 된 그는 융자받는 문제를 포기하고 은행 문을 나서려고 하다가 문득 자신이 전쟁 중 피난길에 서울에서 갚은 빚이 제대로 정리돼 있는지 알아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발길을 돌려 예전에 받은 영수증을 은행직원에게 보여줬습니다. 이 한 장의 영수증이 최태섭의 모든 상황을 바꿔 놓을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그의 영수증을 받아든 그 은행 직원은 깜짝 놀라 소리쳤습니다.

"아! 바로 당신이군요. 피난 중에 빚을 갚은 사람이 있다고 전해 들었을 때 '세상에 이런 사람도 다 있구나!' 생각했습니다. 당신의 그 정직함은 우리 은행가의 전설처럼 회자되고 있답니다."

최태섭은 융자받은 그 사업자금과 은행권의 신용을 바탕으로 성공적인 사업을 펼쳐 나갔습니다. 그는 어려운 시기에 정직의 성품을 밑천으로 사업을 번창시켰고 결국 국내 굴지의 기업을 만들어 냈으며 급기야 전 세계 속에 수준 높은 유리제품을 생산해 수출하는 자랑스러운 나라로 만들어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과연 어떤 사회입니까? 정직과 진실이 넘쳐나며 믿음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건강한 사회입니까? 아니면 부정과 불의·불법과 거짓으로 가득 차 있는 병든 사회입니까? 국가 최고의 지도자가 절대 다수의 국민들로부터 외면을 당한 채 탄핵을 당하게 되고 보이지 말아야 하는 수치스러운 모습을 보이게 되는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정직함을 상실했기 때문이요 국민들의 신뢰를 저버렸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우리를 향해 이렇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엡 4:25). 세상 사는 삶이 비록 힘들고 어렵다 할지라도 정직이 꽃피는 세상,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그 세상은 희망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불행의 원인은 돈의 고갈 때문이 아니라 정직의 상실입니다. 정직은 우리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존재방식이며 선진문화를 창조해 가는데 있어서 가장 필요한 보편적 가치입니다. 건강한 사회에 있어서 참된 힘은 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깨끗한 양심과 거짓됨이 없는 정직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요구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로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가6:6-8)

진정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요구하는 아름다운 삶의 모습은 정의와 사랑, 겸손과 정직함으로 시대적 사명을 감당해 가는 아름다운 삶이 돼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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