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대우조선에 신규자금 2조9000억원 지원키로 결정

정부가 결국 대우조선해양에 신규자금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지원규모는 셈법에 따라 2조9000억원에서 많게는 6조 7000억원까지로 평가된다.

우선 대우조선해양의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2조9000억원의 신규대출을 절반씩 부담한다. 그리고 채무 8900억원의 상환을 유예해주고 2조9100억원은 출자전환하기로 했다. 국책은행이 출자전환액 중에서 1조6000억원을 떠안는다. 정부는 예산을 편성해 국책은행의 자본을 확충할 방침이다.

현재 대우조선해양이 처한 상황에서 출자전환은 그냥 돈을 주는 것과 다름없다. 삼덕회계법인은 지난해 12월, 산업은행이 대우조선해양 대출 1조 8000억원을 출자전환해 보유한 주식의 가치를 1주당 1원으로 평가했다.

일단 살려야…산소 호흡기 부착

정부의 신규 자금지원 결정은 일단 대우조선해양의 숨통이 끊어지면 곤란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대우조선해양은 당장 외부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 가까운 미래에 망하고 만다. 올해 총 9400억원, 내년 5500억원의 회사채와 기업어음을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2015년 지원받은 4조2000억원은 이미 바닥을 드러냈다.

대우조선해양이 쓰러지면 거제지역은 물론이고 국가경제 전반에 큰 타격이 온다. 조선업은 전후방 연관효과가 아주 큰 산업이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큰 조선업체 중의 하나가 도산하면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앞서 대우조선해양은 직영·사내외주 인력을 2015년 9월 기준 총 4만6000명에서 올해 1월 기준 총 3만4000명으로 줄였다. 이번 자금지원으로 4000명을 더 줄이기로 했지만 그래도 3만명은 살아남을 수 있다. 그리고 이 3만명과 관련된 인원은 몇 배 더 많다. 다행히 당분간 대량실직 사태는 피할 수 있게 됐다.

거제시민의 염원을 담은 회생안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대규모 추가 자금지원이 결정되기까지 거제지역 정재계는 사생결단으로 뛰어다녔다. 권민호 거제시장은 "쉴 새 없이 서울을 오가며 지금 수주량이 늘어나고 있으니 올해만 넘기면 된다며 절박함을 호소했다"고 말했다.

김한표 의원은 자유한국당 원내대책회의, 국회 정무위 전체회의 등에서 정부지원의 필요성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기자회견을 열어 도움을 촉구했다.

더불어민주당 거제지역위원회 변광용 위원장도 문재인 전 대표가 주관한 조선산업 살리기 간담회에서 노사 및 시민들의 간절한 바람을 전달했다. 거제시의회도 성명서를 내고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지역경제를 살려달라"고 호소했다.

이처럼 거제시민의 대표자인 이들은 입을 모아 대우조선해양의 부활을 이야기했다. 거제시민들도 우리의 힘이 뭉쳐지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실제로 대우조선해양이 지난 1987년 노사분규로 어려움을 겪었을 때가 그랬다. 경영정상화에 대한 시민들의 간절한 바람이 없었다면 오늘의 거제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1987년 대우조선해양 사내 노동운동의 기폭제가 된 선전 인쇄물이 뿌려지면서 회사 주변은 난무하는 투석과 화염병, 독한 최루가스로 전쟁터를 연상케 했다.

급기야는 8월22일 시위 도중에 사원 한 명이 최루탄에 맞아 사망했고 노사는 격한 대립으로 치달았다. 인권변호사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수감되기도 했던 당시 사태는 대우조선해양이 거제에서 결코 사라지면 안 된다는 시민의 뜻에 따라 안정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

당시 노동쟁의에 참여했다는 한 시민은 "1987년부터 사업장별로 누적된 불만이 폭발해 파업사태가 전국을 휩쓸었다. 대우조선도 예외가 아니어서 김우중 회장이 내려와 협상에 나섰지만 이견이 좁혀지지 않았다"며 "직장폐쇄까지 가는 극한투쟁 속에서도 파국을 맞이하지 않았던 것은 대우조선은 거제시민의 기업이라는 모두의 책임감 때문이었다"라고 회상했다.

시민의 기업, 다시 일어서려면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이번 대규모 자금지원은 강력한 자구노력을 전제로 한다. 시민이 주인인 기업이고 시민의 혈세가 투입되고 있기에 막중한 책임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대규모 자금지원이 발표된 24일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더불어민주당은 동의해주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대책이라는 것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우조선해양을 문 닫게 할 수 없지 않느냐'는 문제의식 말고는 별다른 근본적인 해결방안에 대한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국민의당도 고연호 대변인의 브리핑을 통해 '누구하나 책임지지 않는 정부의 대우조선해양 추가 혈세투입 편파지원, 한진해운과 비교된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같은 반응은 천문학적인 숫자의 적자를 내고도 성과급을 챙긴 일부 임원들과 노조원들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는 여론으로부터 나왔다.

이번 정부의 결정을 보도한 기사를 접한 한 네티즌은 "잘못을 저지른 경영진과 노조 간부들부터 잘라내기 전에는 피 같은 세금을 퍼부을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대규모 자금 투입을 선택한 정부는 같은 날 분식회계를 눈감아준 딜로이트안진 회계법인에게 사실상 폐업을 예고하는 12개월 영업정지 처분을 내렸다. 지금까지 금융당국이 회계법인의 영업정지를 결정한 사례는 모두 3건이고 해당 법인들은 모두 폐업 수순을 밟았다.

지난 2000년에는 대우그룹 분식회계를 묵인한 산동회계법인이 1년간 영업정지를 당해 문을 닫았지만 해당 기업에는 공적자금이 투입됐다. 그 기업이 회생한지 16년이 흐른 2017년. 역사는 반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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