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성 본지 대표이사

▲ 김동성 본지 대표이사

우리나라 최초 여성 대통령 박근혜.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직에서 파면됐다. 국민의 열렬한 지지와 기대를 업고 청와대에 입성했던 그다. 그런 그가 사상초유의 탄핵이라는 굴레를 안고, '공공의 적'이 돼 청와대를 나온다.

필자를 비롯한 국민들은 그가 대통령 선서를 하는 모습에서 그의 뒷모습을 염려했다. 뒷모습이 아름다운 대통령, 퇴임 후에도 사랑받는 대통령이 돼 주길 기도했었다. 그래서인가 인간적으로 연민(憐愍)이 있긴 하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10일 오전 11시 제18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사건의 선고재판에서 재판관 8명 전원 일치로 박 대통령 파면을 결정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당시 탄핵심판이 있기는 했었으나 현직 대통령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파면되는 것은 최초다. 선고와 동시에 효력이 발생되므로 그가 서있는 그 자리에 바로 그 순간 철퇴(鐵槌)가 가해진 것이다.

촛불집회 주최 측인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은 지난 5개월간 1500만 촛불 민심이 이끈 위대한 승리라는 말로 축하하며 이 날을 촛불행진 승리의 날로 선포했다. 그에 반해 태극기를 들고 나왔던 탄핵 반대의 단체들은 분노의 집회를 경고했다.

선고 당일 탄핵 옹호와 반대의 시위 현장에서 2명이 사망하고, 2명이 중태, 8명의 경상자가 발생했다. 의견의 대립이 극(極)을 치닫고 있는 것이다. 지금껏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비상시국에서 우리의 정치인과 국민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걱정이 앞선다.

판결문에서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이 선고가 국론분열과 혼란을 종식시키고 화합과 치유의 길로 나가는 밑거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고, 안창호 재판관은 '정치적 폐습을 청산하기위해 파면을 결정 할 수밖에 없다'고 의견을 보탰다.

그럼 어떻게 해야 국론분열과 혼란을 끝내고 화합과 치유를 할 수 있으며, 정치적 폐습을 청산할 수 있을까. 우선 헌재의 결정은 존중돼야 한다는 말. 그러나 참 무책임한 말 같다. 결국 그 숙제는 또 국민에게 떠넘겨놓은 것이다.

탄핵을 주도했던 단체나 정치인들은 승리했고, 그들이 승리자이고 탄핵을 반대했으니 패배자인가. 여기에 승자가 어디에 있고 패자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대한민국의 정치적 폐습을 종식시키기 위한 불가피한 탄핵이었다면 정치적 성숙을 위한 정권욕의 욕심은 내려놓고 국민 화합의 길에 앞장서야 할 때다. 기쁨의 눈물과 분노의 눈물, 양쪽의 눈물을 닦아줘야 한다.

'나라는 스스로 기운 뒤에야 외적이 와 무너뜨린다.'

전 민주당 김종인 대표가 탈당하면서 던진 이 한마디가 긴 여운을 남긴다. 그렇다. 나라는 스스로 기운다. 모 신문 칼럼리스트는 이 말을 인용해 '우리나라는 외적과 싸움엔 등신, 우리끼리 싸움엔 귀신'이라는 말로 다시 풀어냈다.

요즘 한반도 사드체계 배치문제로 중국의 내정간섭이 도를 넘어 한국 기업에 대한 경제 보복은 전쟁을 방불케 한다. 사드의 폭풍은 거제지역 조선업에도 왔다. 선박 발주를 검토하던 중국국영석유회사가 정치적 상황 때문에 발주를 접었기 때문이다.

지난날의 무수한 왕들처럼, 정치를 하는 이들이 왕권에만 목적을 두고 외세의 침입을 간과한다면, 어쩌면 우리는 다시 한 번 삼전도의 굴욕을 겪어야 할지 모를 일이다. 전 세계는 이번 일을 자신들의 입맛대로 해석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파면 당일 주요 외신들은 파면 소식을 긴급 타전했다.

AP통신은 '한국 첫 여성 대통령의 기막힌 몰락'이라는 제목아래 '2012년 대선에서 아버지 대한 보수의 향수 속에 승리한 독재자의 딸이 스캔들 속에 물러나게 됐다'고 전했다.

탄핵 이후의 정국에 관해 미국 언론 뉴욕타임즈는 '북한과의 대화에 무게를 두는 야당으로 권력이 쏠릴 수 있다'는 전망을 전했고, 윌스트리트저널 역시 '북한과 중국에 더 동조적인 지도자가 들어설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역시 각국의 이해관계에 맞춰진 시각으로 된 해석이다.

이제 탄핵은 인용됐고 대통령은 파면됐다. 헌법에 의해 5월 초순 '벚꽃 대선'이 치러질 것이다. 이제는 망국의 패거리 정치를 청산하고, 정권욕에 사로잡혀 교만하지 않고, 역사의 정체성과 소통하는 통일 대통령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조금 더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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