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광지 수필가

▲ 황광지 수필가

꿩이 왔다. 지난 여름 우리 사무실 뒤뜰에서 천방지축 뒤뚱거리던 꺼병이가 장끼로 돌아왔다. 꿩은 겨우내 자취를 감췄더니 3월이 되자 보란 듯이 모습을 나타냈다.

사흘 전, 무심코 창밖을 내다보던 나는 난데없이 나타난 큰 새의 자태에 들떠 숨을 죽였다. 탐스럽게 자란 꿩은 추위를 벗은 마른 낙엽을 밟으며 숲 가장자리로 나와 한가하게 걸었다. 청동빛깔을 띤 윤기가 반지르르한 깃털을 보니 잘 자란 청년의 기운이 느껴졌다.

무척 반가웠다. 엉성한 솜털의 꺼병이가 금의환향처럼 고운 빛깔 깃털로 나타난 것이 신기해서 오랫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오늘 아침에는 내가 바라보고 있는 더 가까운 곳에서 정면으로 당당한 걸음을 옮겼다. 콘크리트 건물 창문으로 바라보고 있어도, 장끼야 인기척을 느낄 수 없기에 맘껏 목을 세우고 날갯죽지도 넓히며 폼나게 걸었다. 윤기가 자르르한 목덜미가 수려했다.

아직 완전히 성장하지는 않았지만 길어지고 있는 꼬리는 우아했다. 젠체하는 것이 제법 수컷 냄새를 풍겨 내 입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혼자 보기가 아까워서 살짝 손짓해 직원들도 끌어들였다. 꿩이야 흔히 볼 수 있다고는 하지만 사무실에서 일하다 본다는 것, 막 자란 장끼를 본다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니까.

겨울 동안 심드렁 했던 기분이 이제 슬슬 증발되는 것 같았다. 앙상한 나무와 낙엽이 깔린 겨울산에는 새들도 거의 찾지 않아 삭막함을 더했다. 그쪽으로 가는 눈길을 막을 수가 없어 습관처럼 창밖을 향했지만 찬 공기간 가득한 풍경을 보고 돌아설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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