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국학원 주최, 학생·시민 '그때 그날처럼 만세부르기'
조선해양문화관·포로수용소 등 3.1절 행사 다채롭게 열려

제98주년 3.1절 기념행사가 거제에서도 다채롭게 열렸다.

(사)거제국학원(원장 정준우)이 주최한 '그때 그날처럼 만세부르기'는 시민참여형식을 빌어 이뤄졌다. 98년 전 그날의 숭고한 외침을 계승하고 기념하는 이 행사를 위해 기관단체장을 비롯해 200여명의 학생과 시민이 모였다.

참석자들은 거제공공청사 앞을 출발해 고현사거리를 지나 청소년수련관까지 거리행진을 했다. 손에 들린 태극기를 높이 들어 보이며 이날의 참가자들은 그 날의 역사 속 주인공이 되어 만세 불렀다. 거리행진 중 만나는 시민들에게는 소형 태극기를 나눠주며 삼일절의 의미를 되새기기도 했다.

거리의 행진 후 청소년수련관에 집결한 참가자들은 대형 독도현수막을 배경으로 '3.1 정신 계승해 홍익민주주의 꽃피우자'라는 주제로 제98주년 삼일절 기념행사를 가졌다.

이날 행사를 주관한 정준우 원장은 "온 국민이 조금 더 단합되고 화합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3.1절 행사를 준비했다"고 행사의 취지를 말하면서 "태극기의 의미는 화합과 단결이다. 온 국민의 하나 됨의 상징이다. 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선열들을 기리는 이 자리가 국민화합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날 기념식 이후에는 식후공연이 벌어졌다. CHK 댄스시범, 건강한태권도 태권무 시범에 이은 청소년수련관 방과 후 아카데미 학생들과 벤자민인성영재학교 학생들의 독도 플래시몹 댄스에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참여한 시민들은 댄스 동작을 따라하면 즐거운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이날 주최 측에서는 의병, 독립군, 광복군으로 활동했던 33명의 역사적 인물을 소개하고, 독도가 우리 땅임을 바르게 알리는 독도 홍보물을 나누어 주기도 했다.

부모님과 함께 행사에 참여한 최신진(중앙초 6) 어린이는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게 나라의 독립을 응원하고 있지만 예전엔 많은 분들이 독립만세를 부르며 돌아가셨다"며 "일본이 우리에게 큰소리 칠 수 없도록 우리가 우리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당차게 말했다.

역사동아리 인솔자인 이진아(39·통영)씨는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주는 행사라 아이들과 매년 찾고 있다"고 말하면서 "쉴 수 있는 휴일이라고 생각하지만 말고 오늘 하루만큼은 애국선열들을 생각하고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거제국학원은 앞으로도 주요 국경일에 시민들이 함께 참여하고 기념할 수 있는 시간을 계속 만들어갈 계획이다.

3.1절 체험 프로그램 풍성…그날의 의미를 되새긴다

거제해양관광개발공사(사장 김경택) 조선해양문화관과 포로수용소유적공원에서도 제98주년 3.1절 행사가 다채롭게 이어졌다.

'삼일절 체험 한마당'이라는 주제 아래 조선해양문화관에서는 '나도 대한독립만세', '태극 흔들 북 꾸미기', '나라사랑 스크래치 그림 그리기'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해 참여한 시민들에게 삼일절 정신의 의미를 되새겼다.

또한 포로수용소유적공원에서는 어린이를 동반한 부모를 대상으로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 체험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태극기를 직접 그려보게 해서 태극기의 참뜻을 알고 3.1절의 의미를 되새기며 순국선열들의 고귀한 희생을 기리는 시간을 가지게 한 것이다.

멋지게 그림을 그려 풍선을 만든 이유준(거제중앙초 3) 어린이는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 희생하신 분들을 생각하며 그렸다"며 "다 그린 태극기에 바람을 불어넣을 때 부풀어 오르는 모습을 보았다. 우리나라가 더 이상 강대국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는 크고 강한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하며 두 눈을 반짝였다.

행사 참여를 위해 부모님과 포로수용소를 찾았다는 안유주(계룡초 4)어린이는 "많은 분들이 희생당한 3.1절은 참 슬픈 날이지만 그 분들의 희생으로 오늘날의 우리가 있다는 생각을 하면 정말 다행인 것 같다"고 말했다.

거제의 3.1절, 아주 아양리서 4월3일 봉기

거제지역의 독립운동은 3.1운동에 이어 1920년대부터 청년·사회·노동·농민·사회주의 운동으로 이어졌다.

1933년 이후 거제지역 독립운동 진영에서는 사회주의나 민족주의 계열이 퇴보하기 시작했다. 1940년대 거제출신 독립운동가들은 징병거부와 일부 기독교인들의 민족주의식 고취, 거제출신 중 재일조선인 운동에 참여했다.

거제지역 3.1운동의 대표적인 인물 윤택근(1891~1967)은 이인수(1900~1962)·이주근(1898~1966) 등을 모아서 1919년 4월3일 아양리 장날을 맞아 독립운동을 계획했다.

3일 오후 7시반경 윤일·이주근·이인수·이중수 등은 군중 2500명과 함께 거제지역의 3.1운동을 전개했고 이날 시위로 5명이 헌병에게 체포됐다.

또한 주종찬(1893~1933)은 4월3일 옥포교회 교인들과 함께 아주시장 만세시위에 참가했으며 4월6일 이운면 옥포리 망덕봉 앞에서 200여명의 군중과 함께 옥포를 출발해 10리 거리의 아주시장으로 태극기를 들고 만세행진을 했다.

목적지에 도착한 민중들은 아양리 소재의 이운면 사무소를 점거했다. 이 과정에서 전체 13명이 헌병에 의해 체포됐다. 이것이 4.3운동이다.

3.1운동 직후 투옥 참가자들이 석방되자 1920년부터는 거제 전역에서 청년회를 설립해 항일의식을 고취하고 계몽운동을 전개했다. 1924년 9월 거제지역 청년단체는 전체 22개 회원 수 1721명이었다.

지난 2015년까지는 4.3운동이 음력 4월3일로 환산돼 양력 5월2일에 기념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달랐다. 대한제국은 1896년 1월1일 음력과 양력을 함께 사용하다가 1908년 태양력으로 통일한다.

일제도 1911년에 접어들어 공식문서와 신문 및 잡지 등에 양력을 표기했다. 따라서 각종 판결문과 신문보도에는 음력이 아닌 양력 4월3일에 아주장터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것이 4월 3일의 판단 기준이다.

이어 '아주동의 5.2만세운동 재현행사'도 지난 2015년 5월에 제자리를 잡았다. 당시 독립기념관 연구소 김형복 연구위원은 "아주만세운동이 일어난 1919년은 양력제가 정착한 시기로 당시 재판부의 기록을 살펴보면 확인할 수 있다"면서 "만세운동이 장터를 중심으로 벌어졌기 때문에 아주독립만세운동도 장날과 연관해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설명을 했다.

향토사연구소 김의부 선생은 "그 당시엔 통영이나 마산 등으로 오가는 배가 상당히 많았다. '만세꾼'이라고 불리던 이들이 장터마다 전해준 독립만세운동 소식이 섬으로 전해진 것도 이런 경로를 통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올 기념행사에서는 제자리를 잡은 거제의 독립만세운동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진행돼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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