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중심의 조선사회에서 미천한 신분을 뛰어넘어 권력을 거머쥔 매력적인 4대 요녀(妖女)를 꼽자면 장희빈, 정난정, 장녹수, 김개시를 들 수 있다. 그러나 장녹수나 김개시는 반정을 일으킨 공신들이 그들의 거사를 정당화하기 위해 희생시킨 측면이 적지 않다.

연산군은 장녹수와 광해군은 김개시와 짝을 맞추어 희대의 폭군과 희대의 요녀로 묘사하면서 반정의 정당성과 왕의 몰락원인을 합리화했다. 이는 마치 중국 하은주(夏殷周)가 멸망할 때처럼 나라를 망친 폭군에게는 마땅히 음부요녀가 곁들여 있었던 것과 같다.

하나라의 멸망은 술로 연못을 만들고 고기로 숲을 만들어 남녀를 발가벗겨 놀게 했다는 주지육림(酒池肉林)의 주인공 걸왕과 말희가 있다면, 은나라의 멸망은 청동 기둥 안에 시뻘건 숯을 넣어 달아오르면 죄수를 벌거벗은 채로 기둥을 붙잡게 하여 통째로 굽는 포락을 보며 성욕을 즐긴 주왕과 달기가 있다. 주나라 유왕은 웃지 않는 여자 포사를 위해 전국의 비단을 사서 찢어댔고, 드디어 위험할 때만 써야하는 봉화를 남발하다가 망하고 말았다.

장녹수는 첩의 자식으로 태어나 가난 때문에 여러 번 시집가 아이가 있었지만  외모는 방년 16세처럼 어려 보였고, 청아한 목소리로 노래와 춤을 배워 궁궐기생인 흥청으로 뽑혀갔다가 연산군을 만나 하루아침에 후궁에 봉해진다.

비천한 노기에서 정3품 소용(昭容)의 지위에까지 올랐던 장녹수의 성공신화는 중종반정으로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다. 폭군에게는 간사한 신하와 요사스런 여인이 조연으로 등장해야 하는데 이때 장녹수는 성적매력을 무기로 연산군을 마음대로 요리하면서 악행과 광태를 부추긴 여인으로 낙인찍었고, 그녀의 사랑을 침소봉대하여 마치 달기나 포사 못지않은 악녀로 매도했다.

MBC 월화드라마 '역적'에서 연산군이 왕이 되고, 기생역을 맡은 이하늬가 장녹수로 등장하면서 드라마는 본격적으로 전개될 양상이다. 역사적 사실과는 다르게 흥미위주의 픽션이 가미되겠지만 그래도 역사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본다면 재미는 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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