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한숙 수필가

▲ 서한숙 수필가

거제도 동쪽 끝자락에 자리한 '공곶이'는 내리막길로 시작된다. 가파른 내리막의 단상이 여느 길과 달라 마음이 무거워질 때마다 걷고 싶은 길이다. 그 길로 가면 동백나무 터널 아래로 돌계단이 신기루처럼 펼쳐져 내리막의 진수를 단단히 만끽할 수가 있다. 한 발 한 발 내려가다 보면 하늘빛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런데도 뒤돌아보지 않는 것은 내리막의 의미가 무엇인지 찾고 싶은 까닭이다.

하늘빛이 보이지 않는다면 사유의 공간은 그만큼 넓어지는 것일 터, 자세를 한껏 낮추고 가야 한다. 층층이 이어지는 돌계단을 지르밟고 가다보면, 언젠가는 내리막의 끝도 보이고, 막막하던 하늘도 다시 보이기 마련이다. 공

곶이 가는 길은 그런 내리막의 연속이니, 발길 닿는 곳곳마다 고개를 숙이고 가야한다.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내려가야만 수선화와 종려나무·팔손이와 조팝나무가 오순도순 마주하는 생명의 땅이 보인다. 그 너머로 하늘이 바다와 이마를 맞대고 수평선을 그리는 것도 내려가기 위함일 것이다.

내려갈수록 어둑어둑해지는 내리막길이라면, 돌계단이 333개인지 몇 개인지 헤아리지 말자. 그렇지만 공곶이 주인집 헛간에 있는 호미·삽·괭이만큼은 몇 개가 되더라도 헤아려야 한다.
층층이 돌계단 길을 만들고, 노란 수선화 꽃을 피운 사람이 흘린 땀의 가치를 무엇보다 먼저 헤아려야 한다.

그래야만 오지에다 사시사철 꽃을 피운 그 사람의 문드러진 손톱의 아픔도 낱낱이 헤아릴 수 있다. 흙에 닳은 손톱이고 돌에 닳은 손톱이니, 손과 손톱의 경계가 없는 것이 자연스럽다.

한 송이 꽃도 그냥 피어나지 않듯이 공곶이 수선화는 사람의 손길과 더불어 나지막이 피어난다, 가파른 산비탈을 샛노랗게 물들이며 여기저기 사람의 향기를 불러 모은다. '사람과 자연', '사람과 사람'과의 경계를 소리 없이 허물고 따사로운 온기를 품어낸다.

동백나무 터널 밖으로 나오면, 두 갈래 길이 보인다. 왼쪽으로 가면 공곶이 외딴집이 보이고, 오른쪽으로 가면 몽돌 담장길 너머로 파란 바다가 보인다. 집에서도 보이는 바다이고, 바다에서도 보이는 집이다. 그곳이 수선화 천국임을 말하듯 밭뙈기마다 샛노란 희망이 넘실거린다. 종려나무·동백나무·조팝나무·천리향·만리향 등 50여 종의 식물들도 제각기 꽃향기를 더하며 뿌리를 내린 지 벌써 오래다.

꽃구경을 하고 싶다면 어느 쪽으로 가든지 상관없다. 그렇지만 내리막이 끝나는 지점에서는 반드시 왼쪽으로 가야 한다. 그 길로 가면, 대문도 없는 허름한 집 한 채가 보인다. 거기가 바로 공곶이 농원의 주인집이다. 입장료가 없다고 그냥 스쳐 지나가면 안 된다.

가만가만 인기척이라도 내고 가야 한다. 아무런 인기척이 없다면, 밭뙈기 어딘가에 쭈그리고 앉아 꽃모종을 하고 있을 터, 묵례라도 해야 한다. 아니 나지막한 돌담장 너머로 보이는 평상에 앉아서 잠시 쉬었다 가자. 점심 무렵, 어디에선가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부르는 소리가 들릴 터, 살짝살짝 온기라도 나누고 가자.

공곶이는 원시림이 살아있는 거제도 8경중 마지막 비경이다. 예구마을 입구에서 20분쯤 올라가면, 오솔길로 이어지는 내리막이어서 산책하기가 딱 좋다. 알음알음으로 찾던 지난날과 달리 요즘은 알려질 대로 알려져 무리 지어 찾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샛노란 수선화를 가슴에 품고 희망을 노래하는 사람들이다. 4만 5000평, 계단식 다랭이 농장을 별천지로 만든 공곶이 주인집의 오랜 손님들인 것이다. 그들과 더불어 피어나는 공곶마을은 사시사철 꽃잔치가 한창이다.

그러므로 공곶이 내리막길은 예사로운 길이 아니다. 팔순을 한참 지난 노부부의 집으로 가는 길이다. 그 집 앞마당에는 노랑·파랑·빨강·하양 등 원색의 색감이 그대로 살아있어 살맛이 절로 난다.

키 작은 수선화와 키 큰 종려나무가 하나로 어우러져 비경의 극치를 자아낸다. 군무가 따로 없고, 보이는 것만으로도 절창이다. 내리막길의 끝에서도 보이는 하늘이니, 발길 닿는 곳곳마다 사람의 온기로 가득하다. 그렇다. 길은 다시 오르막이듯이 내리막의 끝도 다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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