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선 NH농협은행 장평지점 팀장

'주경야독(晝耕夜讀)'은 낮에 농사를 짓고 밤에 글을 읽는다는 뜻으로, 바쁘고 어려운 중에도 꿋꿋이 공부함을 이르는 말이다. 여기에 주경야독의 산 증인이 있다.

지난 10일 부산경상대학 36회 학회수여식은 박미선(47·거제면) NH농협은행 장평지점 팀장의 자리였다. 28년 직장생활 속에서 4년간의 도전이 결실을 맺었다. 그의 배움에 대한 응어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있는 팔순노모의 기쁨이란 어디에 비할 것인가. 말 그대로 기쁨의 눈물이 충만한 날이었다.

박미선 팀장은 원래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대학을 가고 싶었다. 울고 조르면 부모님이 들어주실 것 같았는데 엄마의 굳은 얼굴은 풀리질 않았다. 3일을 문을 걸어 잠그고 시위를 했다. 3일째 되던 날 새벽. "우짜노, 어린 것이 공부를 하고 싶어 저러는데 가정형편이 안되니 우짜노"라는 어른들의 숨은 넋두리에 16세 소녀는 스스로 빗장을 풀었다. 그렇게 가난을 배웠다.

1989년 12월, 고등학생이었던 그는 농협에 입사를 했다. 하루하루가 바빴다. 월급을 받으면서 가슴의 응어리를 풀고 싶어 방송통신대학에 문을 두드리기도 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결혼과 출산, 시간이 지나면서 주어지는 어머니라는 직책의 책임감 때문에 혼자서 하는 공부의 속도는 오르지 않았다. 공부는 그의 것이 아닌 것 같았다. 간절한 목마름은 단지 그의 바람일 뿐이었다. 괜찮았다. 직장인으로, 부모로, 자식으로 주어진 의무가 너무 많았기에 애써 무시할 수 있고 참을 수 있었다.

2012년 한 사람이 그의 등을 떠밀 때까지는 그랬다. 당시 농협중앙회 거제시지부장으로 있던 김석균(현 경남본부장)씨는 직원들에게 배움을 권유했다. 그 권유의 씨앗은 부산경상대학 경영학과(야간대학) 진학이라는 성과를 만들었고, 지난 2월 졸업이라는 결실을 맺게 됐다.

"지독하게 힘들었다. 일주일에 세번 저녁강의를 받기위해 거제에서 부산으로 배움의 길을 오가야 했다. 하지만 육체의 힘듦보다 제일 힘든 것이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이었다"고 말하는 그는 "공부를 하는 4년이라는 시간 동안에도 이것이 정답인가, 잘 하고 있는 것인가. 항상 고민하고 갈등했다"고 회상했다.

박 팀장은 "그때마다 답을 준 것이 아이들이었다. '엄마처럼 되고 싶다. 그러니까 미안해 할 필요 없다'는 말로 순간순간 꺾일 수 있었던 무릎을 세워줬다"고 울먹였다.

이렇게 육체와 정신을 혹사하면서도 그는 이번 공부가 너무나 재밌었다고 한다. 공부를 하면서 인생에 물음표가 느낌표로 전환되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책속에 길'이 정말 있음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그는 "공부를 하고 실전에 나가는 젊은이들과 달리, 긴 실전경험을 바탕으로 쌓은 이론이라서 더욱 값지다"라며 "살면서 갑갑하게 흩어져있던 물음들이 책장 한 쪽씩 정리되어 하나하나 엮여져갔다.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라고 설명했다.

이어서 "단순한 지식의 습득과는 달랐다.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목마름의 해소였다. 이제 나도 해봤다. 나는 이 느낌을 안다는 자신감이 저절로 생겨나더라"고 밝혔다.

그래서인지 올해 농협에서 많은 후배들이 박 팀장을 따라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4년간 그의 삶을 지켜본 이들이 그를 따르고 싶은 것이다. 그녀가 선배의 영향을 받아 배움의 길에 들어섰듯, 이제는 그녀가 후배에게 마중물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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