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창일 편집국장

▲ 배창일 편집국장

한동안 세계 시장을 호령했던 한국 조선업 위상이 추락하고 있다. 중국은 물론 일본에도 수주량이 밀린 것이 이를 단적으로 증명한다.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현대중공업 등 국내 조선 '빅3'는 극심한 수주 가뭄을 겪으며 치열한 생존 경쟁에 돌입한 상태다. 조선소 일감이 줄면서 직원들이 대량 실업 위기에 처하자 고소득 근로자가 넘쳐났던 거제는 최악의 경기 침체를 겪는 중이다.

지난 2002년 현대중공업은 단돈 1달러에 스웨덴 말뫼에 위치한 코쿰스조선소 '골리앗 크레인'을 사들였다. 조선업 침체로 도시의 상징이던 크레인이 해체되던 날 말뫼 시민들은 눈물을 흘렸고, 이는 '말뫼의 눈물'이 됐다. 한국으로 건너온 이 크레인은 세계 1위에 오른 한국 조선업 현장과 함께했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달라졌다. 조선강국 대한민국을 상징하던 골리앗 크레인 중 하나가 결국 주저앉은 것이다. 경남 창원시 성동산업 마산조선소에 위치한 700t 규모 골리앗 크레인 철거 작업이 최근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성동산업 마산조선소는 2008년 8월 270억원을 들여 이 크레인을 세웠지만 조선업 불황으로 마산조선소 전체가 법원 경매에 넘어갔다. 결국 크레인은 설치한 지 10년도 채 안 돼 해체되는 운명을 맞았다.

조선·해운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한국의 수주 잔량 잠정치는 1991만6852CGT(표준화물선환산t수)로 일본(2006만4685CGT)보다 낮다. 2008년 중국에 세계 1위 자리를 내준 뒤 일본에도 밀려 세계 3위로 전락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지난해 국내 조선 '빅3' 업체에서 퇴직한 정규 직원만 4500여명에 달한다. 조선업 전체로는 2만여명이 실직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조선해양플랜트협회는 올해 말까지 최대 6만3000명의 조선업 근로자가 일자리를 잃을 거란 암울한 전망까지 내놨다. 올 하반기에는 일거리가 없어 수백 개 조선기자재 업체가 연쇄 부도날 것이라는 소문도 돌고 있다.

바다에 정유공장을 만들어내고,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선박이라 불리는 FLNG선(액화천연가스 부유식 생산·저장·하역 설비)을 건조할 수 있는 세계적 기술력을 갖춘 것이 한국 조선업이다. 하지만 화려한 해양플랜트 수주실적과는 달리 국산화율은 20%에 불과하다. 특히 핵심 설계능력은 아직 걸음마도 떼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글로벌 경기침체와 국제유가 회복 지연에 따른 세계 선박 및 해양플랜트 발주량 감소는 올해도 이어질 전망이다. 중복투자에 따른 설비과잉, 중국과 일본과의 수주경쟁, 고임금 문제 등은 풀어야할 숙제다.

그러나 2017년 이후 조선해양산업의 회복을 기대하게 하는 것이 있다. 세계 조선해운 전문기관인 노르웨이선급 및 로이드선급은 올해부터 발효되는 선박 평형수 처리설비 의무화와 2020년부터 선박배출가스 규제 강화로 2025년까지 188조원 규모의 선박 신·개조시장을 전망하고 있다.

정책당국은 선박 배출가스규제 강화에 따라 LNG연료 추진 선박에 대한 시장성에 주목하며 이 분야 대책을 강화하고 있다. LNG벙커링은 벙커-C유, 경유 등 기존 선박 연료유 대신 친환경 LNG를 선박 연료유로 공급하는 것이다. 2030년 선박의 60% 이상이 LNG연료추진 선박으로 대체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경기회복에 대비해 과잉 생산설비 해소와 고부가가치 창출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거제해양플랜트 국가산업단지는 단순제작에 불과한 국내 해양플랜트산업을 한 단계 끌어올릴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해양플랜트 국가산단은 상반기 중 정부 승인을 받으면 착공에 들어간다.

2022년 해양플랜트 국가산단이 완공되면 기존 대기업 중심의 일괄생산방식에 따른 고비용·비효율 생산시스템에 전환이 기대된다. 대기업은 설계·건조, 중견기업·중소조선소는 모듈(여러 기능을 가진 제품을 대규모 단위로 묶은 것) 제작, 중소기업은 단품을 납품하는 구조로 개편된다. 오는 9월 준공예정인 장목면 해양플랜트산업지원센터는 해양플랜트의 기술 자립화를 돕는다.

문제는 수주다. 정부 관계자와 국회의원, 대선주자들이 줄줄이 거제를 방문했지만 별다른 변화는 없다. 거제시도 조선산업 회복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체감되는 현실은 전무한 실정이다. 알맹이와 실천이 빠진 말의 성찬에 시민들의 피로감도 커져가고 있다. 정유년 설날.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말로 국민들에게 희망을 줬던 YS의 말이 불현 듯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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