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계수 칼럼위원

▲ 김계수 거제시외식업지부 사무국장

아픔을 설정할 수 있을까? 다른 사람의 어둠과 절망을 본떠서 그대로의 아픔이 아픔을, 진고름 터지며 앓는 원형의 절망과 어둠을 표현해 그대로 보듬을 수 있을까? 보듬어서 따뜻할까. 보듬어서 편안할까. 보듬는 아픔과 보듬어진 아픔은 계속 함께 할 수 있을까 참 궁금하다. 남의 마음과 모양을 흉내내어 얻어지는 이득이 누구에게 더 힘이 되는지 난 참 궁금하다.

요즘 신문과 방송에서 '코스프레' 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영화나 에니메이션·드라마 등에 나오는 주인공의 행동과 모습, 말투를 그대로 보여주며 좀 과장해 특징을 재현할 때 대중은 재미를 느끼고 대리만족을 느낀다.

주인공의 행동과 특징을 콕 꼬집어 잠깐 보여주기 위해 연기자들은 미리 소품을 챙기고 그 사람에 대해 세심하게 연구하고 따라하며 몇 시간씩 연습을 한다. 마음까지 따라 닮으려는 노력과 성의가 있은 후에 주인공보다 더 진짜처럼 행동을 해 보인다. 이때 대중들은 공감하고 잠깐 내 뱉는 진짜 같은 말과 행동에 동화돼 감동을 받고 호응하는 것이다.

요즘 조기 대선이 있을 거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별 관심 없던 서민들의 모습을 '코스프레' 하는 정치인들이 많아졌다. 그들이 친서민 행세를 하며 찾아가는 곳은 풍족하고 행복한 넓은 마당이 아니라 구석진 곳, 요급하고 궁핍한 곳이다. 그런데 참 어설프다. 함께 아프자고 간 자리에 아픔이 없다. 가난까지 나눌 수 있다고 간 자리에 가난이 없다. 편하고 평범해 보이자고 차린 서민 행세가 너무나 서툴러서 짜증이 나다가도 연민이 든다.

그래서 불편과 아픔의 몫은 늘 그 자리에 남아 있는 사람들의 차지다. 하지만 정치인의 서민 행세가 사라진 자리를 누군가는 끝까지 기억하지 않는다 해서 크게 서운할 것도 없다. 이미 아파버린 마음은 새롭게 밀려오는 고통을 피하지 않고 보듬는 것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은 필요하면 다시 시장을 찾아 맨 손에 생선을 들고 웃을 것이며, 콩나물을 사기도 하며, 맞지 않는 목장갑을 끼고 연탄을 나를 것이다. 또 누군가는 요양병원에서 효자 코스프레를 할 것이며, 시내버스를 탄 것까지 뉴스거리가 되는 밤9시를 맞을 것이다.

그들이 닮아 보려는 코스프레가 순하고 흔하며 서러운 것이 아니라 대부분 이웃들의 생활이기 때문에 이상할 것도 아니다. 다만 그의 손에 묻은 생선비늘을 물티슈와 세정제로 닦을 모습이 안쓰럽고 허접하며, 자신이 만났던 흔하고 아픈 사람들이 바라는 것에 대한 대답을 미리 적고 기다리고 있는 보좌진의 초초함이 안타까울 뿐이다.

누군가는 삶이 무기력할 때 재래시장이나 새벽 어시장, 버스터미널에 가보라 한다. 거기서 모르는 사람들의 활력있는 삶을 보고 자신을 깨우치라고 한다. 모르는 이들의 이별과 만남이 그리고 생활을 위한 투쟁이 수두룩한 그 곳에서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장면을 보고 새삼스러워질 필요는 있다. 그래서 흔하고 아픈 사람들을 이해하고 코스프레해 아픔이 아픔을 보듬고 절망이 절망을 치료하고, 어둠을 위한 빛이 돼 준다면야.

오롯이 나만을 위한 정치는 존재하지도 그럴 수도 없다. 민심을 위해 온전히 하나의 답변을 할 수 있는 힘과 권력도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내 편이 되어 줄 권력에 대해 응원하고 기대한다. 현실 문제에 대한 답도 결국 정치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인들의 위선적이고 대놓고 '쇼'하는 모습을 알면서도 속는 것이다.

우리는 정치의 위선적이고 모순적인 행위에 대해 항상 질문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왜 그렇게 돼야 하는지 따져들고 정치의 코스프레와 정해진 답변에서 함정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정치가 민심을 보듬으려는 것에는 항상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다.

본격적인 대선이 다가오면 헛한 코스프레가 아니라 아프자고 간 자리에 아픔이 있고 함께 가난해질 수 있는 아름다운 정치인이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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