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창일 편집국장

▲ 배창일 편집국장

"그놈의 비가 사람들을 잡아 묵었다."

장승포의 참혹한 날은 1963년 6월25일 발생했다. 그해 6월초부터 시작된 긴 장마로 비가 많이 내린 상태에 6월19일 상륙한 태풍 '셜리(Selly)', 그리고 6월24일과 25일 이틀 동안 내린 500mm의 기록적인 폭우는 70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산사태 전조는 이미 있었다. 6월25일 전 작은 산사태가 몇 번 났었기 때문이다. 집중호우가 내리자 산 아래에 있는 굴세미골 마을 사람들은 스스로 판단해 밤이면 집에서 나와 밖에서 잠을 청했다. 그리고 비가 약해진 틈을 타 짐을 싸고 밥을 먹기 위해 6월25일 오전 집을 찾았다.

주민들과 함께 복구 통제와 피난을 돕기 위한 경찰들도 있었다. 바로 그 시간. 6월25일 오전 8시5분. 천둥같은 소리를 내며 60m 산은 무너졌다. 그 밑에는 밥을 먹고 짐을 싸는 주민과 대피를 독려하는 경찰관들이 있었다.

산사태로 매몰된 넓이는 약 3966㎡(1200평), 토량은 2400㎥에 달했다. 연막 같은 먼지가 약 100m까지 치솟아 마을을 덮쳤다. 주택 6호 12가구가 매몰됐다.

사고 직후 당시 변광영 거제군수를 위원장으로 한 긴급대책위원회가 구성돼 거제중·고등학교에 본부를 설치했다. 안타까운 참사에 인근 주민과 공무원, 학생 등 1000여명이 몰려들어 삽과 괭이로 진흙 더미를 파헤쳤다, 하지만 원시적 방법은 역부족이었다. 하늘을 원망하며 울부짖는 가족들 위로 비는 계속 내렸고, 구조작업은 이어졌다. 사고 당일 저녁 10시 수색이 잠시 중단됐지만 이내 횃불을 든 채 수색작업은 진행됐다.

사고 다음날인 6월26일 새벽 경남도지사의 진두지휘 아래 경찰·해군·해병대 등의 병력 500여명과 불도저 2대, 트럭 5대 등이 동원됐다. 아침밥을 먹던 5남매는 숟가락을 입에 문 채로 발견됐다. 일가족이 모두 몰살된 5가구는 울어줄 사람도 없었다.

공무원들이 이웃 사람들의 증언을 빌려 시신을 수습했지만 떨어져나간 사지를 찾아도 팔다리가 누구의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흙속에 부모와 자식이 묻힌 이들은 울부짖었다. 이날 오전까지 무너진 토사의 50%를 치웠다.

발굴 작업은 사고 후 20여일 뒤에 마무리 됐다. 이 산사태로 주민 61명과 9명의 경찰관이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그 해 7월10일 첫 합동위령제가 열렸다. 순직한 거제경찰서 경찰관 9명은 건국공로훈장을 수여 받았다.

현재 장승포 산사태가 발생했던 지역에서는 대규모 주상복합 아파트가 건설되고 있다. 문제는 아파트 건설 인근 도로에 균열이 발생했다는 점이다. 공사 현장 인근 두모로터리~능포동 구간도로에는 갈라짐 현상이 발생했다. 균열발생 이후 임시로 포장한 곳도 갈라져 버렸다.

그런데도 행정과 공사업체는 도로균열 원인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다. 정밀안전 진단은 고사하고 허가 관청인 거제시와 시공사인 엘리종합건설은 도로파손 원인과 복구책임을 서로에게 돌리기에만 급급한 상태다. 한마디로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무엇보다 우선시돼야 할 안전은 뒷전인 채 복구비 등에 들어갈 돈만을 바라보고 있는 형국이다. 공사비가 늘어나는 것을 좋아하는 공사업체는 없다. 지자체도 없는 살림에 돈쓰기가 쉽지만은 않다. 그러나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는 다르다.

장승포 스타디메르 주상복합 공사현장과 인접한 도로옹벽은 현재 약 10㎝가량 밖으로 밀려나와 있는 상태다. 도로옹벽 보수공사를 위해 40㎏ 시멘트 650포 정도가 사용됐다고 한다. 5톤 트럭 3대 정도의 분량의 시멘트가 도로옹벽 속에 투입된 것이다. 이는 도로옹벽 내에 상당한 공극이 존재했다는 반증이다. 이 때문에 지반침하 및 균열에 대한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구체적인 안전점검 없이 터파기 공사가 진행되면서 인근 주민들의 불안도 가중되고 있다. 그런데도 지난 10일 열린 주민설명회는 거제시와 시공사간 책임전가만 있을 뿐 적절한 안전대책에 대한 논의는 없었다. 양 측 모두 이대로 공사가 진행된다 하더라고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한 것처럼 말이다.

보수공사에 대한 책임이 어느 쪽에 있든 도로균열과 침하발생에 대한 문제해결이 급선무다. 54년 전 발생한 장승포 산사태는 소중한 인명은 물론 엄청난 재산피해까지 동반했다. 주상복합 건설공사로 인한 도로 침하와 균열이 일시적인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가정한다면 54년 전의 악몽이 되풀이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만사불여튼튼이라는 말이 있다. 거제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데 안일함은 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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