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민 칼럼위원

▲ 이용민 경남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인간의 발달단계를 살펴보면 인형에 집착하는 유아기가 있다. 아마도 생명체나 사물에 대한 인식이 정형화되기 전이라 어떤 캐릭터든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에 놓여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행위를 잘 받아들여주는 인형의 속성이 유아의 다양한 표현방식을 수용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린이들이 인형을 가지고 노는 모습들을 잘 살펴보면 재미있는 현상들을 발견할 수 있다.

예컨대, 인형이 자신의 대화상대가 돼 주는 경우다. 자신의 언어로 본인과 인형의 1인2역을 해 내는 광경을 애를 키우다 보면 종종 목격하게 된다. 언어를 익히고 대화의 수순을 연마하는데 큰 도움이 되는 과정이다. 더 나아가 여러 종류의 인형을 놓고 모두의 역할을 담당하기도 한다. 매우 창의적인 놀이이다. 사회성을 연마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인형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렇게 어린이들의 첫 친구로서 사랑받아 왔다. 지금도 가장 영향력 있는 문화콘텐츠이며 엄청난 시장을 가진 산업이기도 하다.

이렇게 유아들이 인형과 교감하는 것처럼, 영혼을 불어 넣어 인간과 동일시하는 예술장르는 '인형극' 정도라고 할 수 있다. 그 중 '마리오네트'는 인형에 실을 매달아 사람이 자신의 의도대로 조종하는 것을 일컫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장르가 그렇게 활성화돼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마리오네트는 관절마다 매달린 끈을 이용해 조종함으로써 '생명'을 얻는다. 숙련된 사람이 조종을 하면 인간의 피조물인양 상상 이상의 움직임을 보여준다.

기원전 그리스나 이집트에서 아이의 무덤에 끈이 연결된 인형이 함께 묻혔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엔 진흙을 빚어 구운 인형에 줄을 매달아 조종하는 '네브로스파스톤'이라는 인형이 있었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의 여러 제전에서도 인형극 공연이 활성화돼 있었음을 알려주는 문헌들도 많다.

마리오네트는 중세와 르네상스를 잇는 시기에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교회에서 본격적으로 공연됐다. 이름도 동정녀 '마리아(Mary)'에서 따온 것으로, 선교와 교육의 목적을 주로 했던 것 같다.

교회에 갇혀 있던 마리오네트는 세속으로 나오면서 비로소 오락성을 가지기 시작했다. 각종 문학 장르와 결합했고 심지어 선정적인 내용까지 등장했다. 교회의 문턱을 넘은 마리오네트는 유럽 전역으로 빠르게 번져나가 17세기 중반을 지나면서 유럽 전체에 골고루 보급됐다. 나아가 자국의 문화와 결합되면서 독창성을 가지게 됐고, 바로크 양식의 영향으로 정교함과 예술성이 보강됐다.

지금은 체코와 프랑스가 인형극이 가장 활성화된 국가로 손꼽히는데, 그 형태는 사뭇 다르다. 체코가 '마리오네트'를 문화적 상징으로 삼고 있는데 반해, 프랑스는 '기뇰(Guignol)'로 승부하고 있는 형국이다.

'기뇰'은 줄 없이 인형 속에 손을 넣어 움직이는 방식인데, 오히려 우리에겐 훨씬 익숙한 형태다. '기뇰'은 '마리오네트'극의 주인공 이름이었으나 명성이 높아지면서 아예 손으로 움직이는 '마리오네트'를 가리키는 용어가 됐다.

프라하의 골목길을 다니다 보면 '마리오네트' 전용극장들을 꽤 많이 만날 수 있다. 모차르트의 오페라부터 피노키오 같은 동화까지 다양한 인형극들이 세계의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상설 공연되고 있다. 여기에 쓰이는 인형들이 장인들의 손을 거쳐 상점마다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데, 이 인형들은 관광 상품으로도 인기가 많다.

16세기 초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를 받던 체코는 독일어 사용을 강요당했다. 귀족과 부유층은 독일어와 독일 문화에 빠르게 경도돼 갔다. 지도층이 사대주의에 젖어 체코어와 문화를 잃게 된 위기의 순간, 민중들 사이에는 민족 정체성에 대한 자각이 일었고 이것은 체코어로 진행되는 마리오네트 운동으로 전개돼 갔다. 당시 활동하던 200여명의 인형술사는 민족운동의 선봉장이었다. 이들의 열정이 체코의 '마리오네트'를 단순한 공연 이상의 가치로 발현시켰다.

요즘 체코 민중들이 사랑했던 '마리오네트'가 광화문에선 전혀 다른 양상으로 표현되고 있다. 최순실이 조종하는 '줄 달린 박근혜 대통령 인형'은 국정농단의 사실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인형술사는 영어(囹圄)의 몸이 됐다. 공연은 이미 끝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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