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Q정전 - 루쉰 作
거제신문 제15회 독서감상문 공모전, 중등부 우수 작품

▲ 이지훈(수월중 2년)

아Q정전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학교 도서관에서였다. 아Q정전은 한 남자가 겪는 일들에 대한 기록이다.

이 인물의 이름은 '아Q'로 청나라 말기의 찢어지게 가난한 하층민이다. 용모가 우습고 제대로 된 교육 하나 받아보지 못한 아Q는 밭도 집도 없이 허드렛일을 하는 처지였다. 그럼에도 자존심 충만한 아Q는 이 사실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건달들과 시비가 붙어 따귀를 맞을 때도, 시장 행인들의 웃음거리로 내몰릴 때도 그가 기껏 하는 생각은 '옛말에 끝까지 참는 자가 진정한 승리자라지? 봐, 내가 이긴 거야. 하여튼 힘만 세고 무식하면 다야? 내가 힘만 조금만 셌어도, 쳇' 정도다.

이후 마을 도적떼의 앞잡이가 돼 정탐을 하던 아Q에게 희대의 사건이 닥친다. 바로 신해혁명이다. 공산당이 무엇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그는 이 참에 혁명파가 되기 위해 공산파를 찾아가지만 입단을 거절당한다.

세월이 흐른 후 혁명의 불길이 잠잠해지자 일부 공산당원들이 관군에 의해 체포된다. 아Q도 공산당의 약탈에 동조했다는 누명을 쓰고 끌려간다.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을 때에도, 총살대로 이송될 때도 그는 '살다보면 목이 잘릴 수도 있는 거지'하며 스스로를 다독이다 최후를 맞는다.

언뜻 보면 무시하고 지나칠 법도 한 아Q는 이 이야기가 호소하고자 하는 인간상을 나타낸다. 집도 가족도 능력도 없이 그는 노비와도 같은 삶을 살아간다. 천민들조차 그에게 비렁뱅이라며 혀를 내두르고 아이들은 장난삼아 그에게 돌을 던진다.

그럼에도 그가 매일매일을 떳떳하게 살아나갈 수 있는 것은 그의 '정신 승리법' 덕분이다. 이렇게 변명을 늘어놓고 자신의 자존심을 포기하지 않는 아Q는 당시 중국의 모습과 비슷하다. 19세기 후반 중국은 열강과의 영토전쟁으로 피폐해진 늙은 사자였다.

젊은 지식인이 루쉰은 조국의 답답한 상황에 분통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러던 중에 혁명이 시작됐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우창에서의 농민봉기를 시작으로 중국 곳곳의 민초들이 들고 일어섰다. 루쉰과 같은 지식인들은 기대에 찬 눈길로 새 총통의 선출과 중화인민공화국의 개국 선언식을 지켜봤다.

아Q의 하찮은 생활상은 당시 중국인들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모습이었다. 혁명에 동조했던 이들조차 공산당이 뭔지도, 혁명이 왜 일어났는지 몰랐다. 한마디로 중국 민중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혁명을 일으킨 셈이다. 그들은 아Q와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아직도 조국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믿으며, 교육도 받지 못하고 굶주림에 쪼들린 중국인들. 그들을 위해 누가 나설 것이며, 과연 무엇을 할 것인가? 이 논란은 혁명 후 중국 지식인들 사이의 뜨거운 감자였다. 신해혁명을 온몸으로 겪어내고 아Q들로 둘러싸인 채 방황하는 청년기를 보낸 루쉰. 그가 내놓은 해답은 바로 '계몽'이었다.

나는 루쉰의 가르침이 오직 신해혁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Q의 모습은 곤 내 친구들의 얼굴이었으며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얼굴이었다. 한창 자신만의 꿈을 안고 미래를 설계할 나이인 대한민국의 중학생들.

나는 아Q를 학원과 입시와 어른들의 기대감 사이에서 부담스러워하는 친구들의 모습에서 발견했다. 루쉰이 말한 대로 모두가 스스로의 주인이 되어 사회를 이끌어나가고 노력을 통해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아Q들이 존재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 또한 수많은 아Q들 중 하나이다. 자율적으로 생각하고 나의 본 모습을 직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 뿐더러, 자존심 때문에 불필요한 행동을 벌이기도 한다. 이런 나의 모습에서 벗어나라고 조언하는 루쉰의 목소리에 힘입어 나도 아Q가 아닌 깬 사람으로 성장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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