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사(居士)를 직역하면 '집에 있는 남자'로, 속세에 살면서도 삼귀(三歸)·오계(五戒)를 지키며 불교를 신행하는 재가남자신도로 불교교단을 구성하는 사대부중의 하나인 우바새에 해당한다. 혹자는 걸사(乞士)가 변한 말이라고 하는데, 걸사는 '걸식하는 사람' 비구를 말한다. 비구(比丘)는 수행의 하나로 탁발하며 걸행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거사와 걸사는 다르다.

거사와 유사한 처사(處士)는 정치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시골에 낙향해 은둔하는 사람으로 공직에 나가지 않고 사회적 명리를 멀리하며 살아가는 선비를 일컫는 말이다. 7세기 활동한 신라고승으로 의상·원효·부설을 꼽는다. 의상과 원효는 스님이지만 부설은 거사다. 부설거사는 선덕여왕 때 경주에서 태어나 스무 살이 되던 해에 불국사 원정선사(圓淨禪師)를 스승으로 출가하게 된다.

부설과 묘화부인의 스토리텔링은 불심이 강한 부설이 수도의 길을 가던 도중에 묘화를 만나 자비보살의 심정으로 속세에 머무르며 도를 닦았던 이야기로, 반드시 속세를 벗어나야만 도의 경지를 이루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하는 재가성도담이다. 부설거사의 '팔죽시'를 새해의 화두로 던져본다.

'此竹彼竹化去竹(차죽피죽화거죽) / 風打之竹浪打竹(풍타지죽낭타죽) / 粥粥飯飯生此竹(죽죽반반생차죽) / 是是非非看彼竹(시시비비간피죽) / 賓客接待家勢竹(빈객접대가세죽) / 市井賣買歲月竹(시정매매세월죽) / 萬事不如吾心竹(만사불여오심죽) / 然然然世過然竹(연연연세과연죽). (이대로 저대로 되 가는대로 / 바람 불고 물결치는 대로 / 죽이면 죽, 밥이면 밥 생기는 대로 / 시시비비는 보는 대로 / 손님 접대는 집안 형편대로 / 시장 물건은 시세대로 / 세상만사 내 뜻대로 안 되니 / 그렇고 그런 세상 지나가는 대로)'

시에 나오는 '竹'은 이두 식으로 풀어 '대로'로 읽는다. 사람의 근심걱정은 자기가 만든 함정이다. 세상만사 내 맘대로 되지 않으니 무거운 짐 내려놓으라는 부설의 메시지를 들어 볼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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