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 불황을 이야기한다. 9층의 윗집 아저씨도 15층의 아저씨도 체육복 차림으로 엘리베이터에 오른다.

반년 전만 해도 아침 출근길이면 서둘러 반갑게 인사하던 사이였다. 하지만 지금은 서로가 어색하기만 하다. 김경인씨(36·장평동)도 출·퇴근 시간만 되면 신경이 많이 쓰인다. 내 일인 것처럼 누군가의 이른 퇴직이 반갑지 않다. 거기에 신경을 더 부추기는 것이 있다.

버려진 작업화다. 출·퇴근길에 보이는 옆집 대문 앞은 작업화 천지다. 처음에는 2~3켤레에 불과했는데 지금은 20켤레가 넘는다. 이 작업화들이 대문 앞을 점령한지도 3개월쯤이 돼가는 것 같다. 처음에는 떠나는 누군가의 전리품으로 생각을 했었다.

한여름에는 많은 조선 근로자들의 고단한 신발이 문밖에서 냄새를 삭히고 있다고만 생각했다. 옆집은 조선소 근로자 7~8명의 숙소로 사용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서로 얼굴 붉힐 필요없이 조만간 처리될 것이라 낙관했기에 겨울의 초입이 되는 지금까지 참았다.

그런데 작업화가 더 늘어난 것이 눈에 들어왔다. 과장을 조금 보태면 작업화 신발가게 같다. 화가 나 옆집 초인종을 누르니 젊은 총각 2명이 내다보며 '버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는 순식간에 작업화를 정리해 나갔다.

씁쓸했다. 작업화 대부분은 새것 같았다. 하지만 쓸 만한 작업화들은 다시는 집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신세가 됐다. 자기 주머니 속 돈만 돈이 아닌데 아깝기만 했다. 여기저기서 돈이 새나가고 있는 것이었다.

김씨는 "돈을 지불하고 사는 것인지, 회사에서 무료로 제공을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헌옷수거함 앞에 널린 것이 작업화"라며 "떠나는 사람들 말을 들어보면 버리기엔 아까워 두고 간다고 하는데, 버릴 건 버리고 줄 수 있는 건 줘야 한다. 남에게 수고를 떠넘기는 일은 삼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버려지는 신발이 많다보니 어떤 사람은 작업화를 추려 시골로 가지고 갔다는 말을 들었다"며 "작업화도 가격이 꽤 나가는 걸로 알고 있다. 회사나 특정 단체 등에서 수거를 하는 등 다시 사용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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