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석 칼럼위원

▲ 김한석 전 거제문인협회장

노인이 돼 텃밭 가꾸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다른 직업의 노후보다는 작업장이 농토라는 점에서 어려움이 덜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농사지을 땅을 마련하는 것도 갖고 싶은 대로 되는 일은 아니다.

우리나라 농가의 평균 소유경지는 0.3㏊(약 300평) 미만으로 극히 영세하기 짝이 없다. 평생 투병과 함께 농사를 해온 나는 작은 농토를 늘리지도 못했거니와 그렇다고 토지를 변형하거나 줄이지도 않았다. 나의 능력과 재분 외의 욕심에 굴복하지 않았던 것에 대한 자부심은 노옹의 나이가 돼서야 남모를 자긍심으로 돌아온다.

내가 가꾼 작물은 벼농사와 마늘·고추·콩·깨·채소 등의 통상작물이었다. 한때 죽순과 유자농사는 이 고장 특수작물로 자녀 학자금을 이끌어주기도 했다. 근력이 많이 들고 경작이 힘든 농사부터 내려놓기 시작해 지금은 보통 작물로 자급자족이 우선이다.

기계화된 벼농사라 할지라도 수익소득 면에서 직불금 같은 정부지원금 의존만으로는 적자를 내기마련이다. 자기인건비로 생산비를 대체하지 않으면 소득은 잉여이득이 되지 못한다. 아무튼 텃밭 농사는 우선 내 힘으로 근력이 허용하는 한 인건비 걱정이 없으니 노후의 단순가족 건사하기는 비교적 안정적인 생활이 돼 생업으로 하는데 알맞다.

나이를 못 속인다고 하지만 나이와 더불어 농사로서 얻는 것은 많고 극히 은혜롭다고 할 수 있다. 이제는 더 변화와 모험이 허락되지 않는 절박함은 인생 황혼기의 지혜와 통찰을 요구하게 된다.

첫째, 농사는 무리가 따른다. 천재지변을 어쩔 수 없듯이 일에 나선 농사아비는 시기와 날씨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제때 다하려고 일을 미룰 수 없어 일에 무리가 따른다. 몸의 회복 또한 제대로 되지 않아 나쁜 증세와 만성질환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런 경우를 대비한 병·의원의 혜택이 텃밭 소득으로는 잘 해결되지 않는다.

여기서 제일 속상하는 것은 의사의 처방만으로 완전한 건강회복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건강은 누구에게나 몸 못지않게 마음의 수련과 내공 없이는 쉽게 되지 않는다. 재앙을 막는 데는 습관화된 과정이 처음부터 바른 길에 서 있어야 한다.

시작부터 한결같은 바른 습관을 길들여야 한다는 말과 같다. 농사는 이런 면을 쉽게 터득하게 하며 노경에 이르러 깨달음을 얻는 것 또한 농사의 근원적인 지혜가 아닐까?

둘째, 농사는 자생적인 생명력을 예시한다. 누구나 아프면 병원을 찾게 되지만 의사의 처방이 전능적인 생명을 심어주지는 못한다. 약은 효력을 나타내지만 유기적인 인체의 저항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래서 만성질환을 가지는 노인은 회춘이라기보다 노약의 가속화에 황혼의 열정마저 잃고 만다. 자연에 맡긴 농사의 큰 믿음은 자생력과 본래의 면역력으로 순화된 인생의 결실을 즐기는 것이 아닐까?

셋째, 농사는 지혜를 터득하는데 세심한 관찰과 경험을 사랑하게 된다. 나무 한 그루의 밑동을 잘 들여다보면 자연과 생태환경의 내재된 실상을 느끼게 된다. 아무리 강한 쇠막대기를 땅에 박아놓아도 얼마 가지 않아 녹이 슬고 마침내 무너진다.

그러나 초목은 그 피부 하나도 바라는 생애를 마감하기까지 면역과 항생의 위대한 물질로 보호돼 어떠한 접지에서도 살고 있다.

그리고 농사는 땅심에 알맞은 시비와 쉼없는 관리 경작이 필요하다. 분에 넘치는 과욕과 일확천금의 불의를 용서치 않는다. 오늘날 IT·LoT·AL·그리고 바이오 등으로 상징되는 '제4차 산업시대'에 농업 기술의 변화와 성장은 텃밭 농사의 애환이 교차되기도 한다.

그러나 노인 스스로 어디서나 건강한 삶을 살며 어찌하든 사회와 더불어 책무를 다하고자 하는 꿈이 있다. 지금 양심과 도리를 벗어나 사회적 물의를 빚고 있는 정치의 질환(疾患)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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