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계수 칼럼위원

▲ 김계수 거제시외식업지부 사무국장

힘써 기다려도 오지 않는 것들이 많은 애타는 세상에서, 그냥 와서 어느 사이 곁에 앉아버린 것들이 있다. 되돌리기에는 너무 와버린 관계들이 그렇고, 버리기는 이제 아쉬울 각자의 위치에 대한 허망함이 가득 찬 요즘.

나라의 근간을 흔드는 온갖 사건 때문에 상처 하나 없이 아파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힘과 힘만이 격하게 생존을 겨루는 사이 진실은 이미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개인·학교·직장·단체·정부 할 것 없이 오랜만에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한 가지 일로 소란스럽다. '나'는 없고 처단해야 할 '상대'만이 존재하는 혼란한 대한민국에 어느 사이 와버린 가을이 무색하다.

모두 끙끙 앓는 사이 하루아침에 정의가 바뀌어져 있기도 한다. 잘 정리해 수습할 겨를도 없다. 이익이나 권리를 교묘한 수단으로 독점하는 것을 농단(壟斷)이라 한다. 역사적으로 국가와 백성을 위해 교묘한 수단을 이용한 적은 있었지만, 이번처럼 철저히 특정인을 위한 농단은 분노를 넘어 온 국민을 허탈함에 빠트리고 말았다.

이번 국정농단 사태를 보고 아이들 입에서도 '순실'이란 이름이 회자되는 것은 참 미안하고 부끄러운 일이다. 어떤 것이 더 바르다고 알려주기 전에 팽팽하게 대립한 어른들의 감정을 풀어 보이는 것이 우선일 텐데, 그럴 사람은 보이지 않고 가능성도 적어 보인다.

이쪽 편의 한목소리는 다른 편의 다른 생각과 부딪혀 격한 마찰음만 시끄럽고 틈 없이 맞닿아 뭉개져 내린 서로의 가슴이 더 아프다 외칠 뿐이다.

"보시오, 내가 더 다쳤으니 저쪽이 잘못한 거 아니오."

그렇게 저울질 된 아픔은 다시 상대를 공격할 무기가 되고, 끝없는 대립으로 끝내 모두 풀썩 주저앉고 말 것이다.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진솔한 사과와 용서를 구하는 것은 생각만큼 어렵지 않다. 옳거나 그르거나 상관없이 자신이 움켜지고 있는 기득권이 무너질까 두려울 뿐이다. 자신이 살아오면서 모았고 지켜야 할 재산·권리·위치적 존재가 왜 중하지 않을까, 무엇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은 자랑거리가 될 수 있지만 과도한 얽힘과 집착으로 인해 서서히 파멸해 가기 마련이다.

곧 이 가을이 가면 잎이 떨어지고 잎 끝 무게를 이기지 못한 이슬도 함께 떨어지기 마련이다. 문제는 떨어지는 이슬을 감상하기도 전에 아예 숲 전체를 갈아 엎어버리려는 작금의 사태다.

대통령은 대통령의 지위에 부끄럼 없어야하고, 여당과 야당은 정쟁을 그만 두고 걸 맞는 책임감으로 혼란을 없애야 하고, 사정기관은 공명정대하게 좌·우 치우침 없이 판단해 국민의 심정을 헤아려야 할 때다.

국정농단 의혹은 완전히 해소돼야 하고, 관련된 사람의 비리는 숨김없이 밝혀 단호하게 처벌돼야 비로소 국민이 아픔없이 가을을 즐기지 않겠는가. 그런데도 비겁한 침묵으로 일관한다면 손손 맞잡은 촛불은 큰 횃불이 될 것이다.

색 좋게 물든 잎 하나라도 더 자세히 봐야 하고, 그 잎 떨어지기 전 그리운 사람의 생각으로 종일 가슴 뜨거워지고 싶은 가을이다.

아름다워야 할 사람의 자연스런 감성이 정치에 짓눌리고 거짓에 구타당하는 대한민국에 서 있는 모든 사람들의 발걸음을 염려한다. 그 발걸음들에 얽혀 있는 여럿 마음들이 적어도 이 가을에는 아프지 않았으면 한다.

지금은 마른 꽃잎들과 설마른 꽃씨들의 행방을 염려하며 푸른 하늘을 올려다 볼 때이다. 차갑고 단단해진 공기를 훅 들이 마시고는 뜨거운 여름동안 무뎌진 속을 담금질해야 다가오는 겨울을 잘 견딜 수 있으리.

버리기에는 너무 와 버린 11월이다. 은빛 머리 하늘거리는 갈대가 아름다운 계절, 아주 뜻밖에 친순한 친구가 찾아와 고현시장 뜨거운 국밥에 막걸리를 실컷 말아 넣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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