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한숙 수필가

▲ 서한숙 수필가

한밤중에 쇼스타코비치의 왈츠곡이 내 무딘 허리를 사정없이 휘감았다. 한 바퀴 빙글 돌건 나는 무도회의 주인공인 양 두 눈을 꼭 감았다. 이런 나와는 달리 음악은 더욱 박진감 있게 들려왔다. 그것이 내 휴대폰 벨 소리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무도회가 무르익은 뒤였다.

귓전에 들려오는 그 음악은 나지막이 새어드는 달빛 사이로 환상의 춤곡인 양 나를 유혹했다. 무작정 리듬을 탈수 없었던 나는 방바닥에 나뒹구는 전화기를 집어 들고 재빨리 통화 버튼을 누른다. 그 순간 왈츠곡이 멈추고, 무도회가 멈추고, 쉴 새 없이 흘러내리던 내 감성도 따라 멈추었다.

"여보세요."
"여기는 미국 플로리다주 인데요…."
"어디라고요?"
"저는 플로리다 주에 살고 있는…."
"그런데요?"

플로리다 주에 지인이 없었던 나로서는 퉁명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잘못 걸려온 전화라는 생각을 한 나머지 상대방의 말을 건성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런 나와는 달리 수화기 저쪽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그렇지 않았다. 서툰 우리말로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고 내 이름 석 자를 또박또박 힘줘 말하는 게 아닌가.

그는 수 십년 동안 한국을 떠나 살고 있는 재미 교포라고 한다. 우연히 그의 손에 들어온 문학지를 통해 내 수필 '계단을 오르면서'를 읽고 전화를 걸게 되었단다. 수필속의 주인공처럼 그 또한 수십 년 동안 일군 일터에서 갑자기 물러나게 되었다고 한다.

이로 인한 허망함을 딛고 다시 일어선다는 게 쉽지 않았단다. 더욱이 고국을 떠나 머나먼 타국에서 겪은 퇴임이어서 막막했다는 것이다. 그런 그가 읽은 수필 한편이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지난 삶을 반추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는 게 아닌가.

그 순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내 글에 대한 칭찬은 고마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과찬인 것 같아서였다. 어쩌면 인생의 대선배 일 것 같은 그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는지 모른다.

나는 겉으로는 기뻤으나 속으로는 몹시 허둥댔다. 글쓰기 보다는 말하기를 좋아했던 터라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었다. 정작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하고 비상구만  찾는 격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는 며칠 전에 받은 편지의 발신인이었다. 통화 속의 내용처럼 머나먼 이국땅에서도 공감 할 수 있는 수필이어서 불현 듯 나에게 편지를 보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다른 글도 읽고 싶다고 하면서 내 수필집을 물어 보았다. 아직 수필집을 내지 못한 나로서는 이래저래 난감한 노릇이었다. 글이 좋아 글밭을 찾았던 내가, 바깥세상에 나갔다가 아예 퍼질러 앉아 놀고 있는 줄 어찌 알겠는가.

살금살금 멀어져간 글밭에서 나를 찾는다는 게 쉽지 않다. 느닷없이 날아온 전화 한통으로 나는 불현 듯 그가 남긴 흔적을 좇는다. 우리말로 쓴 그의 편지와 함께 그가 남긴 한 마디가 황무지로 남은 내 글밭에 거름으로 작용할 것 같아서이다.

누군가 남긴 흔적을 따라 내가 가고, 내가 남긴 이 흔적을 따라 또 다른 누군가가 갈 것이다. 마치 긴 터널과도 같은 막막한 세월 속에 내가 남긴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누군가로 인해 무도회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내 글이 한 알의 밀알처럼 세상 속에 던져지길 원한다면, 지나친 욕심일까.

쇼스타코비치의 왈츠곡이 멈춘 지 오래임에도 내 가슴은 여전히 리드미컬하다. 그래서 잠 못 드는 밤인가. 느닷없이 걸려온 한 통의 전화, 그 흔적을 위해 이렇듯 새벽녘에 다시 일어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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