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면 주민자치센터 한글교실 손정예 강사

동부면 주민자치위원회가 운영하는 한글반은 손정예 강사와 8명의 정예부대가 포진해 있다. 5년이란 시간이 지나는 동안 학생들의 실력은 일취월장이다. 손 강사가 내는 받아쓰기 문제도 척척이다.

동부 최고령 한글반 우등생인 83세 학생이 답지를 받아들고 손을 번쩍 들어 강사에게 따진다. '새벽닭소리'의 받아쓰기 답이 왜 '새벽닭소리'냐는 것이다. 자신은 한 번도 새벽에 닭이 '새벽닭소리'라고 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기에 자신이 쓴 답 '꼬끼오'가 맞다는 것이다.

그러다 수업이 끝난 후 부재중을 알리는 전화기를 확인한 어르신이 한마디를 한다. "부씨 집안에 재중이가 누구지? 야가 전화를 자주 한다." 그러자 옆에 앉은 반장 할머니가 맞장구를 친다. "그 녀석 바람둥인가 보네, 나한테도 전화 자주 한다." 또 다른 어르신도 그 말을 받아 "난 우리 친척인 줄 알았다. 심심하면 나한테 전화해서"라며 심드렁한 목소리로 거든다.

손 강사가 처음 동부면사무소의 한글교실 강사초빙 전화를 받아 이 어르신들과 처음 만난 것이 벌써 5년 전 일이다. 한 초등학교 교사의 개인노력으로 만들어진 한글교재를 받아들고 '기역, 니은'부터 시작했다. 5년이란 세월이 흐른 뒤 어르신들은 그녀의 즐거움이 됐다. 반갑고 또 재미있다.

눈앞에 타야 할 버스가 지나가도 알 수가 없고, 농약병과 일반병이 섞여도 구별하지 못했던 이들의 눈이 비로소 떠진 것이다. 받아쓰기 문제가 즐겁고, 전화기의 글자를 읽는 모습이 자연스럽다.

며느리에게 '딸같이 잘 살아보자'는 편지도 써 줘보고,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에게 자리 잘 잡아두란 부탁의 편지도 띄운다. 한글반 상(上)반 학생들이 된 것이다.

이들과 손을 잡고 걸음의 보폭을 맞추며 걸어가고 있는 손 강사는 부산 출신이다. 남편의 직장을 따라 거제에 왔고, 둘째딸의 아토피와 꽃가루 알러지 때문에 동부면에 자리를 잡았다. 그녀는 지금도 봉사를 하러 간 자리에서 만난 한 어른의 말을 아직까지 잊지 못하고 있다.

"어른들 마음에 꽃을 피우는 것도 니가 할 몫이고, 그 꽃을 꺾는 것도 니가 할 몫이다."

이 한마디는 그녀의 마음을 움직였다. 누군가의 가슴에 꽃을 피워보고 싶었다. 그러나 이상과 현실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살 비늘이 그대로 떨어져 있는 이불과 밥솥 안에 가득한 검은 곰팡이에 벌레까지…. 내팽겨쳐진듯한 노인들의 삶속에 발을 들이기엔 소주 반병의 힘을 빌려도 모자란 것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16년이란 시간이 거제에서 흘러갔다. 이제 그녀의 주위에는 따스한 어머니들의 손길이 한 가득이다. 그녀는 한글을 가르치면서부터 한 번도 김장을 한 적이 없고 된장이나 고추장을 담근 적도 없다. 친정어머니 8명이 함께 하기 때문이다. 물론 한 번씩 속을 뒤집는 억지소리를 하는 분이 있지만 그녀 눈에만 보이는 어머니들의 진심을 알기에 또 참고 넘길 수 있다.

손 강사는 "이분들이 살아오신 시기를 3D(일제강점기·보릿고개·6.25)시기라고 하지 않느냐"며 "모르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강의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모르면 같이 모르고, 알면 같이 안다는 정신으로 해 왔다"고 어른들의 용기를 독려했다.

어른들이 배우고 익히는 교재 내용의 충실도를 위해 주위의 관심을 부탁한 그녀는 "거제시에서 초등학교에 남는 국어교과서를 거둬뒀다가 한글교실에 줄 수만 있다면 어르신들의 교재에 충실함이 더해질 것 같다"고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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