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하, 예로부터 중국을 섬기며 제도와 문물을 따랐는데 이제 언문을 만들어 중국문자를 버리는 것은 오랑캐나 할 짓입니다."

세종임금의 훈민정음 창제에 대하여 가장 강력하게 반대한 사람들은 당시 기득권을 가진 양반계층이었다. 심지어는 세종임금이 총애했던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가 반대의 선봉에 서서 목숨을 건 상소문을 올린다. 세종은 최만리를 비롯한 문자 반대론자들을 옥에 가뒀다가 다음 날 아침에 풀어준다. 최만리는 부제학의 자리를 집어 던지고 낙향했고, 세종임금은 그 자리를 비워둔 채 최만리가 오기를 기다렸으나 최만리는 이듬해 죽고 만다.

생각해보면 우리말에 적합한 글자를 만드는 일에 모든 신하가 찬성할 것 같은데 왜 반대했을까? 만일 그때 한글을 만들지 않았다면 지금도 중국문자인 한자를 사용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한자는 중국식 어법에 맞는 글자로 '나랏말이 중국과 달라 그 문자와는 서로 맞지 아니하므로'라고 훈민정음 서문에 밝힌 것처럼 우리말과 한자는 엄연히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반계층이 기를 쓰고 반대한 것은 '문자독점'이라는 가치 때문이다. 훈민정음 28자는 아주 교묘하여 똑똑한 사람은 반나절이면 익힐 수 있고, 어리석은 사람도 열흘 안에 깨우칠 수 있다고 하니, 백성들이 글자를 알게 되면 의식이 깨어나 양반들이 백성을 다스리는데 곤란함을 겪기 때문이다.

서양에서도 종교개혁 이전에는 라틴어를 아는 사제들만 성경을 읽고 해석할 권한이 있었다. 따라서 사제가 종교를 독점하고 있었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여 누구나 읽도록 하는 일이었고, 글을 배우기 위해 보편적 의무교육이 실시된다. 문자와 지식의 독점이 사라지자 사제와 귀족의 기득권은 점점 사라졌고 집단지성(集團知性)은 산업혁명을 이끌어내는 계기가 된다.

우리말에 한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한자교육을 주장하는 것은 문자를 통한 문화독점임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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