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광지 수필가

▲ 황광지 수필가
종무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2시 남짓된 낮 시간에 집으로 들어가 홀로 가는 해를 보내는 채비를 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라 영화관으로 방향을 바꾼다. 낮시간이니 극장에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아는 매표창구로 다가가다가 '미안하다 독도야'가 전광판에 뜨는 것을 보고 얼른 마음을 결정한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 라디오 뉴스에서 마침 이 영화를 만든 최현묵 감독의 인터뷰를 들었기에 흥기가 끌린다. 뉴스앵커는 흥행이 안 될 게 뻔한데 어떤 생각으로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하게 됐는지 물었고, 감독은 다큐멘터리 영화도 외국에서는 성공한 예가 있다고 답했다.

'기부천사'라고 불리는 가수 김장훈이 내레이션 개런티 전액을 제작비에 기부해줘서 힘이 생겼다는 말도 덧붙였다. 최 감독은 독도를 만났을 때 "미안하다"는 말이 먼저 나와서 제목을 그렇게 붙였다고 했다.

기분 좋게 이 영화가 상영되는 9관을 찾아 들어서니 객석이 휑하다. 물론 붐비는 것은 꿈도 꾸지 않았지만 개봉 첫날이니 몇 명이라도 함께 보기를 기대했는데 한 사람도 없다. 오래 전에도 큰 극장에서 혼자 영화를 본 일이 있어 그리 당황하지는 않는다.

다만, 오늘은 나 혼자인 것을 잠시라도 피하려고 영화관을 찾았는데 역시 홀로 된 것이 좀 씁쓸하다. 구태여 내 좌석을 찾아 앉을 필요도 없지만 표에 기록된 알파벳과 숫자에 따라 앉는다. 최상의 조건을 갖춘 자리다.

나는 독도처럼 홀로 앉아 영화를 본다. 텔레비전에서 보던 특집 다큐멘터리 같은 화면들을 영화관에서 접하니 조금 생소하다. 한편으로는 신선하기도 하다. 익숙한 얼굴들은 거의 없다. 그나마 독도 주민 김성도 님 부부는 몇 번 방송에서 본적이 있어 반갑다. 제일 눈에 익숙한 것은 독도와 괭이갈매기들이다. 그렇지만 그토록 익숙한 독도를 모른척 했다는 자책감을 들게 한다. 가수 김장훈의 내레이션이 무관심했던 사람들의 자책감을 끌어 오르게 한다.

대학생 연합동아리 '생존경쟁' 회원들이 울릉도 선착장에서 6000여명의 손바닥 도장을 찍어 대형 태극기를 그려 독도 앞바다에 띄우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이 큰 줄거리이다. 그들은 서울에서 태극기를 제작하려 했으면 삽시간에 해결될 일이었지만 울릉도를 택했다.

독도 가장 가까이에서 의미를 더하기 위해 한달이 넘도록 기후와 싸우고, 울릉도 주민과 관광객들을 설득하여 손도장을 찍게 하느라 투쟁한다. 할 일 많은 젊은이들이 자신들의 일을 전부 접어두고 선착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눈물겹다.

한 외국인의 말이 가슴을 친다. "한국인은 독도 문제에 대해 감정적일 뿐 학술적으로 알리려 하지 않는다." 한국인끼리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떠들어봐야 무슨 소용이겠느냐는 것이다. 김성도 님과 부인 김신열 님도 그런 말을 한다. 독도 문제가 불거지면 관광객들이 몰려와서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잠시 떠들다 가버리고는 시간이 지나면 잠잠하게 잊는다고.

우리가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노래만 부르는 사이 일본은 세계적으로 '일본해' '다케시마'를 홍보하는 치밀한 작업을 거쳐 세계지도에서 독도가 점차 사라지게 만들었다. 배경음악으로 깔리는 '홀로 아리랑'이 오늘 따라 더 쓸쓸하다.

드디어 완성된 대형 태극기를 싣고 독도 선착장에 이른다. 워낙 커서 선착장에 펼치기고 힘들어 안간힘을 쓴다. 작은 선박들과 스쿠버들이 조금씩 끌어 바다 위로 인도한다. 눈이 시리도록 맑은 독로 앞바다에 무사히 태극기가 펼쳐진다.

생존경쟁 회원들의 감격이 그대로 내게도 전해져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뜨거움을 모아 나는 박수를 보낸다. 외롭게 버티고 있는 독도에, 독도주민으로 버티고 있는 김성도·김신열 부부에게, 독도를 지키려는 모든 사람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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