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정수동(鄭壽銅)이 조정승 무순의 집에 들렀더니 어느 부자가 뇌물로 준 10만 냥을 받고는 에헴했다. 그런데 또 어느날 조정승집에 갔는데 행랑어멈이 아이가 돈을 삼켰다고 야단이었다. 행랑어멈이 정수동을 보자 "나으리, 이 애가 엽전 한 닢을 삼켰는데 죽지 않을까요?" 마침 조정승이 마루에 앉아 있었다. 큰소리로 "염려 말게, 10만 냥을 꿀꺽 삼키고도 배탈조차 나지 않는데 돈 한 닢 삼켰다고 뭐 별탈 있겠는가?"

양진(楊震)이 동래태수로 임명받고 부임하던 중 전에 자기가 추천해 벼슬에 오른 왕밀(王密)의 집에서 하룻밤을 자게 됐다. 밤중에 왕밀이 금 열 근을 가져와 "깊은 밤이라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으니 안심하고 받으십시오" 하자 양진이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네가 알고, 내가 안다(天知 地知 子知 我知 천지 지지 자지 아지)"라는 그 유명한 사지(四知)가 '후한서'에 실려 있다.

'기름 먹인 가죽이 부드럽다'라는 속담처럼 선물은 때로 위선의 탈을 쓰고 뇌물로 변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명절이 되면 가족·친지·지인들 간에는 작은 선물로 마음을 전하는 미풍양속이 우리에게는 있어왔다.

배고프게 살았던 1950년대의 선물은 쌀이나 밀가루 등 식재료들이 최고의 선물이었다면, 전쟁이 끝난 1960년대에는 밀가루·설탕·조미료를 일컫는 삼백(三白)과 라면이 인기가 높았다. 1970년대에는 생필품과 커피세트가, 1980년대에는 본격적인 경제성장과 함께 명절선물 역시 다양해지고 고급화되기 시작한다. 이 시기에는 넥타이·지갑·벨트·와이셔츠·스카프 등 잡화용품이 명절 선물로 사랑을 받았으며 백화점의 배달서비스가 시행되면서 정육 선물세트도 각광을 받기 시작한다. 백화점 상품권이 명절선물 트렌드가 된 것은 1990년대이고, 2000년대 이후로는 명장이 만든 전통주나 와인이 인기를 끌었다.

오는 9월28일부터는 '김영란법'에 따라 선물은 5만원 이하만 가능함에 따라 미풍양속보다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부정부패의 척결에 방점을 찍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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