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장렬 칼럼위원

▲ 윤장렬 독일 베를린자유대학교 언론학 박사과정
올여름은 유난히도 더웠다. 예부터 가장 더운 시기로 몹시 더운 날씨를 '삼복더위'라고 했다. 우리 조상들은 복날의 의미를 '벼가 나이를 한 살씩 먹는다'에 뒀다. 벼에는 줄기마다 마디가 있는데 초복·중복·말복을 지나며 벼의 마디가 셋이 되고, 그래야 이삭을 거둔다고 했다.

2년 만에 독일에서 한국을 방문한 필자에게도 무더운 여름 날씨가 낯설고 힘들다. 그런데 이보다 더 큰 짜증을 가져오는 일들이 있다. 바로 요즘 언론에서 접하는 내용들인데, 해외에서 접하지 못하던 실시간 데일리 뉴스를 한국에서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자연스레 흡수하다 보니 몇 가지 이슈들이 눈에 띄었다.

먼저 김영란법을 꼽을 수 있다. 시행을 두 달여 앞둔 지난 7월28일 헌법재판소는 합헌 결정을 내렸다. 대한변호사협회와 대한기자협회·사학법인연합회가 헌법소원을 냈었고, 이에 주류 언론과 정부가 앞장서 훼방을 놓더니, 헌법재판소가 김영란법에 분명한 입장을 표명하게 됐다.

헌법을 골자로 헌법재판소가 김영란법의 시행을 용인했으나 언론은 물론 정부 관계부처들과 지방자치단체들 그리고 국회의원들까지 서민 경제의 위축을 우려하는 발언들과 법안의 실효성을 여전히 지적하고 있다. 이는 헌법재판소의 권위를 무시하는 행태이며, 더 나아가 우리 사회에 공공연하게 자행되는 국가 기관들의 따로 놀기를 재확인하는 순간이다. 

둘째 사드 배치에 대한 언론 보도다. 지난 7월13일 정부는 경상남도 성주군을 사드 배치지역으로 발표했다. 사드는 미국의 미사일 방어 체제인데, 정부가 이를 허용한 시점에 우리 언론에서 눈에 띄게 나타나는 보도 행태가 있었다.

먼저, 사드 배치 지역으로 선정된 성주 시민들의 반대운동에 대한 보도에서는 지역인들의 이해 다툼으로 사드문제를 축소·왜곡시켰다. 이는 본질적으로 논의돼야 할 사드 배치의 문제제기를 어느 지역이 더 타당한가의 문제로 탈바꿈시켰다. 성주 시민들의 반대운동이 한 달여 진행된 현 시점에서 제3의 지역에 사드 배치는 용인 가능하다는 논리가 일반적 여론으로 변질돼 버렸다.

또 요즘 북핵문제나 북한의 테러위협이 신문과 방송에 자주 등장하게 됐다. 저녁 뉴스에서 가장 먼저 거론되는 북한 소식들은 지금 당장 전쟁도발을 예상하는 분위기다. 이러한 상황들은 김영란법에서 혼선을 보이던 국가 기관들의 따로 놀기가 좀처럼 보기 드물게 이번 사드 배치 문제에서는 단합된 모습이며, 언론은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불필요한 역할을 충실히 담당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리우올림픽의 방송 보도다. 영어로 'Rio'라는 곳을 우리는 지금 '리우'라고 부르고 있는데 방송에서 '리우, 우리'라는 표기를 보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국제 도시명을 제 입맛에 맞게 바꾼 일도 웃기지만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올림픽 경기를 지상파 3사가 모두 동일하게 방송하는 불필요한 방송 편성은 방송사들의 정체성을 의심하게 된다. 8월 한 달 지상파 3사는 전 국민들의 눈과 귀를 올림픽 경기로 올인시키고, 스포츠 정신은 물론 선수들의 드라마틱한 명승부들에 웃음과 감동을 전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방문한 고국에서 한 달여 시간을 보내며 무더위에 적응해야 했고, 신문과 방송을 접하며 한국사회의 구조를 주시해야 했다. 사실 이번 여름, 무척이나 무더운 한국에서의 여름, 신문과 방송을 보면서 늘어나는 짜증은 폭염 탓이 아니었다.

삼복더위를 지나며 벼의 마디가 하나씩 추가되는 자연의 섭리가 있듯이, 우리 언론에도 그리고 우리 사회에도 삼복더위와 같은 절기나 시간이 지나면 이삭을 거둘 시기가 찾아오리라 믿고 싶다. 이런 기대 없이는 달리 짜증을 해소할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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