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민 칼럼위원

▲ 이용민 경남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거가대교를 이용해 거제로 들어오는 차량이 매년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반면 거제로 들어오는 또 다른 관문인 통영톨게이트를 이용한 차량은 지난해와 비교하면 절반 이하로 줄었다고 한다.

통계만 봐선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거가대교 개통 후 통행량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상황에서 이 다리의 효용과 거제시의 관광 정책에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 있어 보인다.

요즘은 자본과 기술이 축적된 시대라 웬만한 규모의 다리 정도는 뚝딱 수월하게 만들어내지만 예전엔 수십 년에 걸쳐 진행되는 대역사인 경우가 많았다. 다리는 단절돼 있던 육지와 육지, 섬과 육지, 섬과 섬, 아랫동네와 윗동네를 연결시켜주는 소통의 상징이다. 다리 하나 때문에 전혀 다른 문화를 가졌던 사람들이 동화돼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내기도 하고 유통의 양상이 달라져 산업지도가 새로 재편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다리는 그래서 역사를 담고 있고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애환을 간직하고 있다. 요즘은 보기 힘든 광경이 됐지만 예전엔 정월대보름 다리밟기가 동네의 큰 행사였다. 어린시절, 나이만큼 다리를 건너며 소망을 빌면 소원을 들어준다는 말에 열심히 걸으면서도 나중에 나이가 많아지면 어떻게 그 회수를 다 채울까 미리 걱정했던 기억도 있다.

어떻게 보면 강이나 바다를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 대한 동경으로만 살다가 다리 하나로 한 동네가 되니 더 이상 큰 소망이 어디 있었을까 싶다. 다리 하나로 서너 시간 거리가 한 시간으로 단축되기도 하니 이런 마술이 또 어디에 있었을까.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토목 중에서도 가장 파급효과가 크고 문화적이며 삶의 근간에 깊이 관여되는 게 교량공사였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세계 어느 도시든 이 다리가 랜드마크가 되고 관광명소가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를 일이다.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와 맞은편의 마린카운티 사이에는 골든게이트 해협이 지난다. 이 해협을 가로 질러 페리가 운항하고 있었는데 1930년대에 접어들면서 다리를 건설하자는 의견이 모아졌지만 복잡한 지형적 이유로 실현 불가능한 사업으로 사장될 처지에 있었다. 설계자인 조셉 B. 스트라우스는 보수단체와 페리업자들의 끈질긴 반대에도 불구하고 수차례의 설계 변경을 통해 1937년 착공 4년 만에 기적을 이뤄냈다.

총 길이는 약 2,800m로 당시 세계 최장의 이 다리는 현수교라는 독특한 방식으로 이후 세계적으로 현수교 바람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선 남해대교가 이 양식으로 만들어져 한 동안 국내를 대표하는 랜드마크 역할을 하기도 했었다.

체코 프라하에는 프라하성과 구시가지를 연결하는 카를교가 있다. 블타바강을 가로지르는 이 다리는 천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9세기 초 나무로 지어졌던 것이 홍수와 화재로 여러 차례 유실되다 체코의 왕인 카를 4세에 의해 1406년에 완공된 것이 현재의 다리 모습이다.

50년에 걸쳐 만들어졌다는 카를교의 가장 큰 특징은 다리 위에 놓인 동상들이다. 다리의 난간 양쪽에는 성서 속 인물과 체코의 성인 등 30명의 조각상이 세워져 있는데, 이 동상들은 각각의 개성과 사연을 지니며 카를교를 단순한 교량을 넘어 미학적 완성물로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 중 가장 인기 높은 동상은 네포무크의 상이다. 동상 아래 부조에는 혀가 잘린 채 강물에 던져지는 네포무크 신부의 모습이 묘사돼 있다. 당시 왕이 왕비가 정부를 두고 바람을 핀다고 의심해 고해성사를 받는 네포무크는 왕비의 부정을 알 것이라 여겨 내용을 알려달라 하지만 네포무크는 이를 거절하다 왕의 노여움을 사 혀가 잘린 채 강물에 수장된다는 사연이다. 특히 이 동상 밑 동판에 손을 대고 소원을 빌면 행운이 깃든다는 전설 때문에 지금도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동상이기도 하다.

영화 '아마데우스'의 첫 장면에 나오는 붉은 지붕들의 도시 프라하는 모차르트가 고향 잘츠부르크보다 더 사랑한 도시라고 알려져 있다. 카를교는 프라하성으로 들어가는 중세의 관문이기도 하고 소설가 카프카를 추억하며 구시가지의 회색 골목으로 들어가는 사색의 문이기도 하다.

60년대 피로 얼룩졌던 '프라하의 봄'은 이제 보헤미안의 마지막 색채를 선율에 담아낸 드보르작과 함께 축제의 이름으로 승화됐다.

다리는 단순히 건너다니는 곳만이 아니다. 불가능했던 공간에 우리를 인도해 주는 꿈이기도 하고 다른 문화와 역사를 이어주는 시간여행의 통로이기도 하다.

다리가 가진 진정한 의미를 알아야 관광정책도 제대로 나온다. 다리는 삶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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