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노래
어머니의 노래
  • 거제신문
  • 승인 2007.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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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옥례 계룡수필 회원

비둘기 한 쌍이 날아와 전깃줄에 앉는다. 고개를 내두르며 꾸루꾸루 울더니 날아가 버린다. 잠시 후 다시 나타난 비둘기가 시멘트로 포장된 길 위로 내려앉더니 부산하게 오간다.

사람들이 오가는 곳에서 먹이를 구하기가 영 불안한가 보다. 부리로 이곳저곳을 찍기도 하고 뒤뚱거리며 내달리기도 한다. 산에 사는 비둘기가 인가로 내려와 먹이를 찾는 것을 보니 산속의 먹이 사정이 여의치 않은가 보다.

사람들은 비둘기 하면 흔히 ‘화목한 가정’, ‘부부애’ 등을 떠올린다. 가정을 소중히 여기는 비둘기들의 속성 때문인 듯하다. 비둘기들은 귀소본능이 있어 먼 길을 떠났다가도 반드시 둥지로 돌아온다. 집을 지을 때도 암수가 서로 돕는다.

수컷이 나뭇가지를 나르면 암컷이 보금자리를 짓는다. 다른 새들과 달리 비둘기는 갓 태어난 새끼에게 젖을 먹여 기른다. 암컷뿐만 아니라 수컷의 모이 주머니에서도 비둘기 젖이 분비되어 번갈아가며 젖을 먹여 새끼를 돌본다. 암수가 힘을 합해 보금자리를 꾸미고 새끼를 돌보는 모습이 화목한 가정의 모습으로 비춰진 것일 게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는 농한기가 되면 마을 사람들이 모여 천렵을 벌이곤 했다. 돼지도 잡고 음식도 푸짐하게 장만한다. 커다란 가마솥에 돼지고기를 넣고 푹 끓인 국밥이 막걸리와 함께 상에 오른다. 얼큰하게 취한 마을 어른들은 꽹과리 소리에 맞춰 덩실덩실 춤을 추기도 하고 목청을 돋우어 창을 하기도 했다.

하늘빛 공단치마저고리를 두르고 머리를 뒤로 틀어 올린 어머니의 모습은 어느 때보다 예뻐 보였다. 늘 허름한 옷차림에 정돈되지 않은 머리 모양으로 하루하루를 고달프게 살아낸 어머니에겐 더 없는 자유의 날이었다.

어느 정도 취기가 오르고 흥이 돋우어지면 어머니는 꼽추 춤을 추었다. 저고리 뒷덜미에 앞치마를 둘둘 말아 넣고는 등을 한껏 구부린다. 영락없는 꼽추다. 양팔을 너울거리며 덩실덩실 돌아간다. 우스꽝스런 어머니의 모습에 마을사람들은 배를 잡고 웃어댔다.
 
꾸루꾸루꾸루 사랑합시다.
먹을 것은 없어도 사랑합시다.
꾸루꾸루꾸루 사랑합시다.

어머니의 한이 서린 노랫소리가 춤사위와 함께 강변의 푸른 허공으로 날아오른다. 어린 마음에도 마을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는 어머니의 그런 모습이 싫었다. 슬그머니 다가가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잡아끌면 어머니는 어린 나의 손을 뿌리치곤 했다.

강변에 어슴푸레한 어둠이 내리면 그제야 휘적거리며 집으로 향했다. 어머니의 삶은 평탄치만은 않았다. 어머니보다 네 살이나 아래인 아버지는 고달픈 어머니 인생의 바람막이가 되어 주지 못했다. 가난을 이기기 위해 온갖 잡일을 마다하지 않는 어머니와는 달리 틈만 나면 술을 마셨고 주사 또한 심했다.

힘든 농사일이며, 집안일, 오 남매를 돌보는 일까지 어머니의 몫이었다. 허리를 다쳐 누워계시는 할아버지 수발까지 드느라 어머니의 등허리는 펴질 날이 없었다. 그런 어머니는 바람 앞에 선 촛불 같았다.

바람막이 하나 없는 벌판에서 자신의 몸을 불태우는 촛불처럼 위태롭게만 보였다. 자신의 살점을 녹여 가정에 불을 밝히려는 어머니의 노력은 공허하기만 했다. 아버지의 주사로 집안에선 언제나 큰소리가 그치질 않았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우리들을 끌어안고 흐느끼는 어머니의 모습은 애처롭기 그지없었다.

어쩌면 어머니는 비둘기처럼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때로는 먹을 것이 없어 끼니를 거르기도 했지만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고 기쁨이 되어 줄 수 있는 그런 사랑을 꿈꾸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남편이 드리운 그늘 아래서 지친 몸을 쉬고 싶었을 게다. 사랑 받는 여자이고 싶었을 게다. 남편과 함께 꾸민 아늑한 보금자리에서 자식들과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었을 게다. ‘먹을 것은 없어도 사랑합시다.’ 가슴 속에 서리서리 얽혀 있는 한을 토해내듯 온몸으로 부르던 ‘비둘기’ 노래.

간절한 소망을 담아 강변의 푸른 허공을 향해 토해내던 노래는 어머니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울림이었다. 우스꽝스런 몸짓으로 비틀거리며 절규하듯 부르던 노래. 그것은 사랑 받고 싶은 한 여인의 간절한 몸짓이었다.

여든을 바라보는 어머니는 거동이 불편한 몸으로 낡은 둥지를 지키고 있다. 뼈만 앙상한 어머니를 바라보면 사위어가는 불꽃같다. 꼽추 춤을 추며 마을사람들의 흥을 돋우던 젊은 시절 모습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다. 강변의 허공으로 카랑카랑하게 울려 퍼지던 어머니의 노랫소리가 그립다.

하늘에 드리운 붉은 노을을 헤치고 비둘기가 날아오른다. 아마 제 둥지를 찾아 들려나 보다. 숲 속 어딘가에 비둘기 가족들이 정겹게 살아가는 아늑한 둥지가 있을 게다. 비둘기가 날아간 숲 속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꾸루 꾸루 꾸루 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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