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민 칼럼위원

▲ 이용민 경남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지역에서 숙박업을 하는 지인들과 자리를 함께 했다. 한창 성수기라 바쁠 것이라 짐작하고 차만 한 잔하고 헤어지려는데 이 양반들이 붙잡는다.

"요즘 바빠서 식사할 시간도 제대로 안날텐데 괜찮겠냐?"고 되물으니 허탈하게 웃으며 올해 농사는 영 시들시들하다는 반응이다. 이유를 들어보니 젊은 사람들이 죄다 포켓몬을 잡으러 속초로 가는 바람에 남해안 쪽으론 거의 일정을 잡지 않는다는 것이다. 요즘 지구촌을 들끓게 하고 있는 '포켓몬 고' 열풍의 유탄을 제대로 맞고 있는 셈이다.

이런 진단이 제대로 된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궁금해서 찾아 본 '포켓몬 고' 광풍은 내 상상을 초월하고 있었다. '포켓몬 고'는 닌텐도 자회사인 포켓몬컴퍼니와 증강현실 소프트웨어 개발사인 나이앤틱이 공동 제작한 증강현실(AR·Augmented Reality) 모바일 게임이다. 미·일 합작인 셈이다.

증강현실(AR) 기능을 위성항법시스템(GPS)·구글지도와 결합시켜 애니메이션 캐릭터인 포켓몬을 수집하는 게임인데, 이 게임의 가장 큰 매력은 내가 거주하고 있는 실제의 공간이 게임공간으로 이용된다는 점이다.

모바일에서 앱을 다운 받으면 실제 공간화면을 네비게이션의 실사화면처럼 구현할 수 있고 거기에 갖가지 종류의 포켓몬 캐릭터들이 겹쳐 출몰하면 포켓몬 볼이라는 기구를 이용해 캐릭터를 잡는 것이다.

기존의 게임이 동일한 공간 환경에서 이뤄졌다면 이 게임은 사용자가 처한 특수한 공간 상황을 그대로 반영하기 때문에 현실감이 훨씬 더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이 게임은 포켓몬 캐릭터를 수집하거나 특정 몬스터를 키워 다른 사용자와 경쟁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 게임은 올 7월 6일부터 미국·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독일·영국 등에서 첫 출시된 후 큰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이 게임에 필요한 지리정보의 공개가 국가안보와 관련해 불가하다 하여 포켓몬 고 출시 제외지역으로 분류돼 있다.

그런데 포켓몬 고는 구글맵에서 타일형태로 국가구분을 하기 때문에 실제 국경과 차이가 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선 속초·울릉도 등 일부지역이 여기에 해당돼 게임이 가능하다고 알려지면서 속초행 버스가 매진되는 등 엄청난 열풍이 일어났다.

포켓몬 고를 통해 다 죽어가던 닌텐도가 다시 살아난 것은 미시적인 얘기다. 이 게임은 향후 산업 전반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본다. 아울러 여러 종류의 사회적 문제들을 파생시킬 가능성들도 예견된다.

온라인 여행사 익스피디아는 세계 최초 포켓몬 고 마스터가 되기 위해 떠난 닉 존슨이라는 미국 청년의 여행경비를 후원하기로 했다고 한다. 현재 출시돼 있는 145종의 포켓몬 중 142종의 포켓몬을 수집한 이 청년에게 나머지 3종이 많이 출몰하는 지역을 여행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것이다.

연이어 스페인에서도 포켓몬 사냥을 위한 패키지 여행상품이 출시되고 또 그들을 안내해줄 마스터급 가이드를 선발하는데 수천 명이 지원했다는 뉴스를 보면 앞으로 이 게임이 여행업계에 몰고 올 태풍이 어느 정도가 될지 가늠이 된다.

한편 현실 속에 펼쳐지는 가상의 캐릭터를 쫓다 보니 끊임없이 충돌과 낙상, 교통사고 같은 안전사고가 보고되고 있다. 심지어 이 게임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포켓몬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신고한 러시아 여성까지 등장했다 하니 그야말로 귀신에게 겁탈을 당했다는 옛날 설화보다 더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포켓몬 고의 열풍은 가만 들여다보면 성공요인을 다 갖추고 있다.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의 표현에도 나오지만 채집이나 포획·서식 같은 용어에는 포켓몬 캐릭터를 단순한 게임 캐릭터 이상의 생명체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원시 상태에서의 인간이 가진 가장 큰 본능인 사냥, 수렵 같은 행위를 잘 이끌어 낸 것 같다. 또 잡은 캐릭터를 보관하는 '도감'이라는 것을 보면 마치 옛날 포수나 강태공들이 포획한 짐승을 박제하거나 큰 물고기를 낚아 탁본을 떠 그 기쁨을 유지하고 과시하고자 했던 본능도 잘 건드리고 있다.

그래서 급기야 도감 케이스도 곧 출시될 예정이라는 소식도 들린다. 다만 예측하건데 지금처럼 발견되면 던져 잡는 순한 포켓몬에 곧 식상할 인간의 본성을 이용한 공격형 포켓몬의 등장으로 서바이벌 프로그램 정도로는 발전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포켓몬에게 포획되는 인간 혹시 맞아 죽는 인간이 나오지 말란 법이 없지 않은가.

'문화가 기술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 문화를 만든다'는 '기술결정론'은 현대에 와서 매우 설득력 있는 이론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포켓몬 고'가 던진 주사위의 향방이 궁금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다.

분명한 것은 이 게임은 이제 시작이라는 것이다.

저작권자 © 거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