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민 칼럼위원

▲ 이용민 경남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연일 폭염의 기세가 일상을 주눅 들게 한다. 중부지방에는 간간이 소나기라도 내리는 모양인데 일기예보에도 남부지역엔 한동안 비소식이 없다.

아침에 음악을 걸어 놓으려고 보니 문득 월드뮤직 음반이 눈에 들어 왔다. 아니 어쩌면 오랜만에 그 음반들을 무의식적으로 찾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며칠 후면 펼쳐질 리우올림픽을 약간 의식했는지도 모른다. 지구촌의 체육제전에 200여 국가가 모인다니 월드뮤직은 시기상 적절한 선택이 될 거 같다는 무의식이 작용한 듯하다.

월드뮤직은 말 그대로 세계 각국의 음악을 말한다. 하지만 한 동안 우리나라에선 '제3세계 음악'으로 한정돼 인식된 적이 있다. 원인을 가만히 따져보면 우리가 학교를 다니면서 받았던 음악교육이 초래한 결과이기도 하다. 음악교과서는 서양음악 일색으로 꾸며져 있었고 당연히 음악 어법 자체가 편향되게 습득됐던 것이다.

90년대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으로 우리 전통음악에 대한 이해가 너무 부족하다 해서 음악교과서에 상당한 비중으로 배려받긴 했지만 여전히 전통음악이 적어도 서양음악과 대등한 수준으로 생활 속에서 대접받고 있는지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아무튼 최근까지 음악교과서는 서양음악과 전통음악이라는 큰 구분 속에 균형을 맞추고 있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출범 후 세계 각국의 도시들이 특징화되고 또 그들끼리 일종의 네트워크를 통해 지구촌의 일원으로 다양한 연대를 해 나가는 시점에, 음악교과서는 세계인이 만나서 교류하는 공간에서 작동할 수 있는 교양의 신장에 전혀 기여하지 못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세상의 모든 음악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리듬과 음계가 전혀 다른 대륙의 음악에서 조우할 때 느껴지는 발견의 기쁨과 생소하기 짝이 없는 리듬이 가져다주는 희열에 나도 모르게 몸이 반응하는 당혹스러움 같은 것들이 선사하는 신선함이 있다.

"음악이 거기서 거기지, 뭐 별다른 게 있을까?" 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음악은 자연의 반영이며 역사의 투영이다. 또 집단적 감수성의 총아로서 매우 예민하기까지 하다.

우리음악은 강박으로 시작해서 약박으로 끝나는 반면 서양음악은 약박으로 시작해서 강박으로 끝난다. 이 차이를 우리는 학교 다닐 때 '갖춘마디'와 '못갖춘마디'로 배웠는데 그것이 문화적 차이에서 생긴 것이라고는 별로 인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월드뮤직이 제3세계 음악이 아닌 말 그대로 인류 전체의 음악으로 들려지고 불리어지기 위해선 많이 접하는 방법 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선 교육 당국이나 각종 매체들부터 편식에서 벗어나야 할 것 같다.

때마침 아까 걸어둔 음원에서 폭염에 어울리는 아프리카 노래가 흘러나온다. 남아공의 디바, 미리암 마케바가 부른 말라이카(Malaika)라는 곡이다. 스와힐리어 가사로 부르는데 번역하면 '내사랑 나의 천사'쯤 되는 것 같다. 2008년에 70대 중반의 나이로 작고한 미리암 마케바의 음색은 원시성과 영원성이 옅은 아메리카노처럼 강하지는 않지만 시종 작동하고 있다.

문득 대학입시를 앞두고 있을 때 진학 담당선생이 신생학과나 희귀학과에 주목하라면서 한국외국어대학에 있는 스와힐리어과를 소개해 줬던 기억이 난다. 스와힐리어는 아프리카 동부해안에 있는 섬인 잔지바르에서 기원했다고 하는데 탄자니아·케냐·우간다 같은 나라의 공용어이며 콩고·르완다·부룬디·소말리아·모잠비크·말라위의 일부 지역에서도 쓰이고 있다. 또 아프리카의 유럽이라고 하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도 부분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아프리카의 음악은 이슬람의 영향을 많이 받은 이집트·수단·리비아·튀니지·알제리·모로코 같은 지중해 연안 국가들이 비슷한 형태로 발달해 있고 에티오피아나 니그로, 마다카스카르 같은 지역에서는 독자적인 음악어법을 형성하고 있다.

포효하듯 떼를 지어 부르는 일종의 합창음악은 아프리카의 현대적 음악 자산으로 부각되고 있어 세계 합창계에 매번 충격을 주고 있기도 하다.

유럽인들은 오래 전 아프리카를 '암흑대륙'이라고 불렀는데 피부색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미지의 땅이라는 이미지도 있었다. 아랍어로 흑인은 수단으로 발음된다. 그래서 '수단'이라는 나라 이름의 유래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수단 내에서 쓰이는 언어인 누비아어로, 검다는 것은 소말리아로 발음되는데 자기들 보다 더 검은 사람들이 사는 나라가 '소말리아'가 되는 셈이다.

피부톤으로도 구분을 하는데 문화적 차이는 오죽할까 싶은 생각이 든다. 올림픽이 다가온다. 월드뮤직도 함께 즐기는 여름이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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