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남원 땅 만복사는 대찰(大刹)이라 수백 명의 승려가 아침에 시주를 받으러 나갈 때와 저녁에 돌아올 때의 행렬이 장관이었다. 이런 만복사귀승(萬福寺歸僧)이 남원 8경중의 하나였다. 조선 세조 때의 김시습(金時習)은 이 모습을 배경으로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라는 불교소설을 남겼다.

총각 양생(梁生)은 일찍 부모를 여의고 만복사의 구석방에 살았다. 배필 없음을 슬퍼하던 중에 부처와 저포놀이를 해 이긴 대가로 아름다운 처녀를 얻었다. 그녀는 왜구의 난리 중에 원통하게 죽은 처녀로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며칠간의 뜨거운 사랑을 나눴던 귀신처녀는 저 세상으로 돌아가고 양생은 지리산으로 들어가 다시는 장가들지 않고 처녀의 명복을 빌면서 남은 삶을 마쳤다는 영혼과의 사랑 이야기다. 양생이 미녀를 얻은 것은 부처와 내기도박이 사건의 발단이 된다.

민간에 수집한 이야기로 엮은 '어우야담'을 비롯한 민담집에는 노름밑천이 떨어지자 아내를 판돈으로 걸고 노름했다는 기록이 심심찮게 보인다. 송(宋)나라 상인 하두강(賀頭綱)이 예성강변에서 첫눈에 반한 미모의 여인을 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녀의 남편에게 접근하여 그녀를 뺏기 위해 막대한 금품과 그의 아내를 걸고 내기 바둑을 두어 끝내 여인을 빼앗는다는 예성강 설화를 고려가요 '가시리'의 배경설화로 보는 학자도 있다.

SBS 월화드라마 '대박'의 첫 회는 숙종이 백만금의 아내에게 반해 그녀를 차지하기 위해 남편 백만금과 투전판을 벌렸고, 어리석게도 이에 걸려들어 아내를 숙종에게 빼앗긴다는 내용으로 극이 시작된다.

지난번 탈북한 한 여성이 증언하기를 "남한에서 충격적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심지어 자기 아내의 성(性)을 걸고 도박을 벌이기도 한다. 이때 많은 사람 앞에서 말로 '내가 질 경우 아내와 하룻밤을 보내게 하겠다'라고 말해야 한다. 일종의 구두계약"이라고 했다.

'인간은 도박하는 동물'이라고 찰스 램이 '엘리아 수필'에서 말했지만, 사람을 건 도박은 해도 너무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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